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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Eternity and Beyond - Katseester - Final Fantasy XIV [Archive of Our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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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 기델로는 또 다른 모험거리를 찾아내었습니다. 샌슨은 사무실에서 도망쳐 그와 함께할 생각에 그저 기쁠 뿐입니다. 게다가, 불멸의 삶을 살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니까요. 홍련의 해방자 최후반부/칠흑의 반역자 잡 퀘스트 초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Additional Tags(태그) : Canon Compliant(캐논 컴플라이언트 - 공식 줄거리를 참고합니다), Canon-Typical Violence(공식 설정과 유사한 폭력 - 공식과 비슷한 수위의 폭력 묘사가 등장합니다), Slow Burn(슬로우번 - 느릿하게 달아오르는 로맨스), no betas we die drowning in continuity errors(베타 리딩 없음 - 영어 원문은 글을 한번 읽고 검수해 주는 분이 없었다고 하지만, 한국어 판은 번역하는 놈이 읽었습니다)
Notes : 전 음악 학위를 갖고 있어요. 음유시인에 대한 팬픽을 쓰는데 그걸 쓸 필요가 있었지요, 왜냐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으니까요. (추가적인 설명은 글 아래에 있습니다.)
To Eternity and Beyond - Katseester
샌슨 스미스는 평범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건 지독히 일상적이었고, 켜켜이 쌓인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는건 늘상 있는 일이었다. 햇빛이 그의 사무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것도 흔한 일이었고, 매 순간 순간마다 비좁고 답답한 방에서 뛰쳐나가 현장에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일반적이었다. 늘 그랬다.
주머니 속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거의 정오에 가까웠다.
그리고 평범한 날들이 그랬듯, 샌슨 앞에 식사 시간 시작도 전에 방해꾼이 나타났다.
“우리가 여행을 갈 거리를 찾아냈어,” 기델로가 인사 대신 말했다. 그는 문가에 팔짱을 끼고 기대선 채, 보통 샌슨에게는 그날 내내 있을 큰 두통을 예고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샌슨은 굳은 다리를 풀고 밖으로 나가 그의 친구와 검은장막 숲의 얼룩진 그늘지붕 아래에서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싶었지만, 오늘까지 늘어나는 서류 작업을 끝내지 못했을 경우를 상상하자 뭐 씹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응?” 그는 제 앞의 레포트에 다시 집중하기 전 기델로의 다 알겠다는 눈초리를 피하며 말했다. “무슨 여행인데?”
기델로는 사무실을 세 걸음만에 성큼 걸어들어와 양 팔을 샌슨의 많은 작업량 앞에 턱하니 올려두었다. “음유시인들이 기꺼이 떠날 법한 모험이지,” 샌슨의 눈을 마주치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말인 즉슨 넌 이 쓸데 없는 일들은 좀 그만두고 나한테 집중을 해야 한다는 거야, 왜냐면 이건 훠얼씬 더 중요하거든 - “ 그는 샌슨이 쓰고 있던 편지를 거꾸로 읽느라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개인 지원자들을 위한 훈련 체계’? 진심이야?”
샌슨은 깃펜을 잉크병에 놓고 의자에 뒤로 기대며, 기델로의 들어올려진 눈썹과 못 믿겠다는 눈빛을 피해 한숨을 내쉬었다. "쌍사당에 알라미고 혁명 이후로 꽤 많은 지원자가 들어왔고, 난 그 사람들의 능력이나 부족...한 부분들을 측정해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거든. 솔직히, 이거 악몽이야.”
“진급이 네가 원하던 만큼 마냥 즐겁지 않지?” 기델로가 웃으며 물었다. “개인 지원자 나으리들이 꽤나 성에 안 차나봐?”
“이 사람들 중 대다수는 목수 길드나 가죽공예가 길드에 가는게 나을 거야, 그렇지만...” 샌슨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늘어뜨렸다. 알라미고 해방운동 중 많은 이들을 잃은지 얼마 안된 쌍사당은, 병사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이들을 돌려보낼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기델로가 동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길 왜 왔다고 생각해?” 그가 물었다. “네가 부탁했다고, 은혜라도 베풀자고 이 징그러운 조직에 들어온 건 확실히 아닌거 알테고. 물론 네가 하루종일 내 등 뒤에서 잔소리 하며 찔러대는게 아주 재미 없었다는건 아니지만."
“그럼 왜 들어왔는데,” 샌슨이 시험하듯 물었다. “내가 부탁해서가 아니면?”
기델로가 방어적인 제스처로 팔장을 끼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변덕이라고 해 둘게,” 음유시인은 모호하게 답하며 더 설명하지 않았다.
샌슨은 그 문제를 더 꺼내지 않았다. 그는 기델로가 이런 식으로 굴 때면, 꼬치꼬치 캐물어도 답을 얻기 거의 불가능하다는걸 알았다. “그럼 네가 찾은 음유시인의 모험은 뭔데?” 그래서 샌슨은 대신 기델로가 이곳을 방문한 사유로 화제를 돌렸다. “위험한 거야?”
“오, 당연하지,” 기델로의 자세가 익숙함과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의 즐거움으로 풀어지며 말했다. “내가 재건 활동 평가 때문에 굽어보는 바위에 갔던거 기억하지? 그때 카스트룸 벨로디나에서 하루 묵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듣는 사람을 불멸로 만들어 줄 지도 모르는 노래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고 한게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
기델로의 이야기를 꽤 흥미롭게 듣고 있던 샌슨은 그 부분에서 코웃음을 쳤다. “내가 굳이 지난번에 전설적인 노래가 있다는 동화 속 이야기를 쫓아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기시켜 줘야 할까? 나 때문에 우리 죽을 뻔 했었거든.”
“그래 그래, 그땐 그랬었지,” 기델로가 선뜻 동의했지만, 샌슨이 분에 찬 표정으로 뭐라 덧붙이기 전에 말을 이었다. “중요한건, 그 인간이 그걸 말한 직후에 입을 딱 다물었다는 거야. 꼭 해서는 안될 말을 뱉은 것처럼 그 이상 말하길 겁내는 눈치였어. 내가 그 사람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전까지 절대 말 안 하겠다고 완강히 버티더라고.”
샌슨의 등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뭐?" 기델로가 누군가를 그의 손 안에서 말 잘 듣게 만드는 모습은 전혀 상상하기 즐겁지 않아서, 샌슨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질투는 딱히 자랑스럽다 할 감정이 아니었지만, 기델로가 관여될 때라면 그는 속절없이 휘말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 그가 딱딱하게 물었다.
기델로는 샌슨의 심통난 표정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어느 부분에서 이렇게 기분이 상한거야?"
샌슨은 답하지 않았다. 기델로는 샌슨의 짜증에 헛웃음을 지으며, 뒤로 기대 다시 팔짱을 꼈다. "비밀이라 이거지. 난 그 녀석이 비밀을 뱉을 때까지 하루종일 옆에서 술을 사주며 돈을 거의 다 썼거든. 게다가 정말 지겨웠다고. 관심도 그다지 없는 사람 앞에 앉혀놓고 자기가 불편한 다리 하나만 믿고 어떻게 해방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끝도 없이 떠들어댔어. 하지만 나한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했거든"
기델로가 다시 중요한 비밀이라도 말하듯 샌슨에게 몸을 숙였다. "술집이 워낙 시끄러워서 알아듣기 쉽진 않았지만, 우리가 로흐 셀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은 도시에 가면 그 노래의 악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 그 노래는 영원의 장송가라고 부른대."
회의론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주의깊게 이야기를 듣던 샌슨은 그 부분에서 픽 웃었다. "그렇다 쳐도 우리가 로흐 셀 호수 바닥을 어떻게 가? 거긴 수십 패덤 깊이에 소금으로 꽉 찬 곳인데."
"그래서 우리 음유시인 친구가 필요한거지," 기델로가 답했다. "내가 벌써 편지 보내놨으니까 넌 그 예쁜 머리 굴리면서 걱정 안 해도 돼. "
아, 맞다. 샌슨은 빛의 전사가 동방에 갔을때 얻었다는 축복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험가가 오고 있다는 뜻은-
“얼른 출발하려면, 이건 얼른 끝내는게 좋을 것 같네,” 샌슨이 그의 끝내지 못한 서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샌슨이 위를 슬쩍 올려다봤을 때 기델로는 설핏 미소짓고 있었다.
“정말 가볼만 할 거야, 날 믿어.” 기델로가 문을 향해 성큼 걸어가며 말했다. “영원히 사는 거 상상해본 적 있어?”
빛의 전사는 정오 하고 한 시간이 지나기 전, 샌슨과 기델로가 점심 식사를 끝낸 직후에 도착했다. 둘은 기델로가 입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의식을 시작했는데, 하급자와 식사를 같이 하는게 금지되진 않았지만, 이런 습관은 꽤나 많은 못마땅한 시선을 받곤 했다.
샌슨은 상급자들의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기델로의 함께하는 시간에 감사했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쌍사당 상급자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창을 들고 버틸 각오가 있었다. (기델로는 상급자들에게 굉장히 직설적이고 가차없다는 점에서 좋은 영향을 주는 부하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을 대놓고 지루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누르발 사건 이후 샌슨은 기델로와 마찬가지로 상급자들에게 이전과 같은 존경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모험가가 두 사람을 찾아냈을 때, 기델로는 샌슨에게 한창 한 부대원이 전날 밤 와인을 과음한 나머지 다음 날 바지도 입지 않고 순찰에 30분이나 지각했던 날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둘 모두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무렵 빛의 전사는 문가에서 물었다. "그 사람이 바지도 안 입고 나타나서 처벌을 피하려고 노래를 불렀다고?"
"그거 그래도 꽤 감동적인 노래였어," 기델로가 그의 숙취에 찌들었던 동료를 옹호하려 말했다. "우리 다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어, 물론 너무 크게 웃느라 그런거였긴 하지만."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샌슨이 모험가를 온화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었던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샌슨은 종종 모험가를 그리다니아나 검은장막 숲 어딘가에서 발견하곤 했지만, 둘의 바쁜 일정 때문에 충분히 대화하지는 못했었다.
모험가가 잘 지낸 건 아닌 것 같다고 샌슨은 말할 수 있었지만, 과거에 봤던 것 만큼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와 기델로는 빛의 전사와 다른 현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샌슨은 친구의 눈 아래에 드리워진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빛의 전사의 동료들을 깨우는데 별 진전이 없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난 괜찮아," 모험가는 제 말에 샌슨과 기델로가 거짓말을 반박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희가 그렇게 찾고 싶어하는 노래는 뭔데?"
그래서 기델로는 이날 두번째로 동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원의 장송가?" 모험가는 기델로가 이야기를 끝내자 말했다. "그냥 장례식에서 부를 노래가 아닌거 확실해?"
"그럴수도 있겠지," 기델로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지만 찾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우리가 같이 위험한 여행을 한지 꽤 오래 됐잖아? 난 우리가 그리웠거든."
모험가가 잠시 생각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음, 돌의 집에서 연락이 오기 전에는 돌아갈 필요가 없긴 하니까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델로가 기쁨에 찬 함성을 질렀고, 샌슨은 이 모험을 얼마나 오래 떠나게 될지 궁금했다.
샌슨이 그들의 눈 밖을 벗어나 다른 임무를 떠날 수 있도록 보르셀 대령을 설득하는 것은 예상한 것 보다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의 상사는 샌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어깨 뒤에 선 기델로의 일단 너네는 샌슨에게 빚진게 있잖아 하는 하팔릿 같은 험악한 눈빛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우연히 튀어나온 모험가의 이름과 재앙텔의 지원도 한몫했다.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기델로와 모험가와 함께 여행하는건 샌슨이 원하던 바였다. 기델로는 즐거운 이야기를 쏟아내는 분수대 같았고, 모험가는 수다스럽진 않지만 셋 모두를 요란하게 웃게 만들 사족을 덧붙이곤 했다.
검은장막 숲에서 기라바니아로 이어지는 여행은 특별한 일이 없었고, 세 사람이 카스트룸 벨로디나에 도착한 저녁 즈음, 모험가는 아르파와 졸민을 찾으러 홀로 출발했다.
"쟨 너무 변덕쟁이야," 기델로가 턱에 손을 괴고 스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그건 우리만의 저녁 시간이 있을 거라는 뜻이겠지."
"모험가님한테 우리 말고 다른 친구가 있어도 괜찮거든," 샌슨이 지적하자 기델로는 헛웃음을 지었다.
"쟤한테 우리말고 누가 필요해?" 그가 숟가락으로 샌슨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스튜 한 방울이 샌슨의 볼에 튀었다. "어, 미안."
기델로는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어 샌슨의 뺨 위를 엄지로 쓸었다. 만약 조금만 더 오래 그랬다면, 샌슨은 너무 긴장해 바보같은 말을 했을 지도 모른다.
"농담이야," 기델로가 말을 이었다. "걔한테 전 세계에 우리가 발 걸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다는거 알아. 뭐, 네가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그 눅눅한 곳에서 간신히 나와 있기만 한다면 너랑 같이 시간 보내는 것도 좋으니까 상관없어."
"그래," 샌슨은 늘 그렇듯 짜증날 정도로 잘생긴 기델로 얼굴 말고 눈앞의 음식에 집중하려 애쓰며 약하게 말했다.
"나 좀 봐봐," 기델로가 샌슨만 들을 수 있도록 가볍고 대수롭지 않은 톤보다 조용히 말했다. 샌슨은 슬쩍 고개를 들 타이밍을 잡았고 기델로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놀랐다.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 일단 듣고서 그냥 꺼지라고 말해도 괜찮지만, 그래도-"
그 순간 소리로 보아 만취한 것 같은 손님 하나가 맥주잔을 바닥에 내려치며 제 일행에게 두서없이 소리치기 시작했고, 일행 또한 손에 쥔 잔을 내던지며 맞고함치기 시작했다. 그 두 사람이 제 방으로 끌려갈 때 즈음(이미 몇가지 집기를 부수고 테이블을 엎은 뒤였다), 샌슨은 기델로가 물으려 했던 질문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문득 샌슨이 그 사실을 기억해 냈을 때, 기델로는 숙소에서 얌전하지만 살짝 시끄럽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샌슨은 음유시인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 머릿속 의문을 구석으로 밀어내며 잠에 빠졌다.
기라바니아 전원 지대를 통과하는 나머지 여행 또한 이전과 같았다. 샌슨은 그의 생각이 정처없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변방지대를 지나 호반지대에 진입하는 동안에는 눈에 띄는게 없었지만, 포르타 프라이토리아를 지나자 샌슨은 눈에 제대로 들어오는 풍경에 멈춰섰다.
"무슨 일 있어?" 기델로가 친구의 부재를 알아차리고 앞에서 물었다. 모험가는 근처 바위투성이의 지형을 조사하고 있었다.
"미안," 샌슨이 둘을 따라잡으려 잰걸음을 걸으며 말했다. "그냥 좀 놀랐어. 여기 정말 아름답네."
샌슨은 기델로가 여행 목적지가 변방지대라는 것을 말했을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랐었다. 이곳이 갈레말 치하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고, 부대 부하들로부터 이 지역이 해방됬다는 보고도 몇 차례 받았었다. 그래서 바보같게도, 샌슨은 이곳 풍경 점점이 바위보다는 금속 건축물이 더 많이 서 있을 거라고 상상해온 모양이다.
"감명이라도 받았어?" 기델로가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마치 여기 있는 다른 사람이 음유시인에 통달한 모험가가 아닌 것 마냥 물었다. (그러니까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모험가가 아니라 샌슨인 것 처럼)
"그럴지도," 샌슨이 무심결에 답했다. 샌슨은 황금빛으로 불타는 하늘과 망가진 궁전의 실루엣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 시각적 경외를 말로 표현하는게 가능할런지 궁금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여기 즈음에 캠프를 세워야 할 것 같아," 바위들을 조사하던 모험가가 제안했다. "내일 일찍 출발하면 아침 중으로 도착할 수 있을거야."
"괜찮을 것 같네." 기델로가 동의했고, 셋은 분주하게 길 외곽에서 멀지 않은 곳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샌슨은 이런 분야에 경험이 그다지 없었다. 텐트의 캔버스 천은 끝도 없이 길었고 모양에 맞춰 꽂아야 할 막대는 너무 많았다. 샌슨의 어설픈 행동에 도움의 손길이 쏟아졌고, 기델로와 모험가는 몇 분 만에 구조물을 세울 수 있었다.
매번 사람을 놀랍게 하는 모험가는 초코보의 안장가방에서 냄비를 꺼내더니, 식사 준비는 자신이 할테니 불을 붙일 재료들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길에서 5성급 대우를 받게 될 줄은 몰랐어," 샌슨이 선선히 인정했다.
"쟤 까르보나라 만들고 있어. 까르보나라! 그것도 야영지에서 모닥불로. 계란은 대체 어떻게 갖고 다니는거야?" 기델로가 거의 혼잣말로 물었다. 기델로는 불쏘시개로 쓸 마른 잔디와 풀들을 흩어져있던 덤불에서 모아 제 옆에 쌓아두고 있었다.
"불만있다는건 아냐," 샌슨이 발로 큰 가지를 둘로 부러뜨리며 끙 소리를 냈다. "염장육이나 크래커가 먹고 싶은건 아니지?"
"솔직히 진짜 멋있긴 하지." 기델로가 말했다. "이정도면 충분할까?"
샌슨은 머릿속으로 숫자를 조금 세었다. "몇 조각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아."
두 사람이 야영지로 돌아갔을 때, 친구는 어떻게인지 간이 부엌을 만들어 놀라운 속도로 마늘을 썰고 있었다. 샌슨과 기델로가 작게 불을 피웠고, 네 번 만에 불을 붙였으며, 곧 모든 재료들이 함께 녹으며 만들어내는 군침도는 향이 밤하늘을 채웠다.
까르보나라는 맛있었다. 샌슨은 조잡한 모닥불 위에서도 완벽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모험가의 비결이 무엇인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식사를 끝내고 뒷정리에 짐 정리까지 끝내자, 모두 하룻밤 묵을 자리를 잡았다. 모험가는 그의 활을 다듬고 있었고, 기델로는 리라로 곡을 흥얼거렸고, 샌슨은 매일 그랬듯 일기를 쓰고 있었다.
샌슨은 멀리 서 있는 궁전의 빼어난 외관을 묘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허나 샌슨은 자신이 쓴 노래에 단 한번도 만족한 적이 없었다. 항상 어떤 조각이 빠진 것 처럼 보였다. 샌슨은 그 빠진 부분이 늘 노래가 힘을 얻도록 해 주는 부분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래도 샌슨은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마 매일 비슷한 시도를 할 작정이었다.
머릿속 생각을 적어보려 안간힘을 쓴 끝에 시조 몇 줄을 쓴 끝에, 샌슨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노트를 짐 속으로 밀어넣었다. 기델로가 그를 모닥불 너머로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어?" 그가 조용히 물었고, 샌슨은 한숨을 쉬었다.
"쓰다가 막혀서. 생각보다 더 피곤했나봐." 샌슨은 손 뒤로 하품을 눌렀다.
"많이 늦은 시간이긴 하지. 내일 일찍 출발하려면, 얼른 자야 하기는 해."
그래서 둘은 그렇게 했다.
다음날은 해가 일찍 떴다. 샌슨은 다른 동료들보다 먼저 깨어났다. 혹여 그들을 깨울까 창술사는 조심스럽게 침낭에서 벗어나 텐트를 빠져나왔다. 모험가의 초코보는 편한 자세를 찾아 몸을 구부린 채 자고 있었다. 몸을 펴고 아침 햇살의 평화로움을 느끼며, 밤 사이 꺼졌을 불을 다시 붙이러 몸을 돌렸다. 물을 끓이고 여행용 머그 컵을 꺼냈을 때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렸다. 슬쩍 돌아보자 기델로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비틀비틀 텐트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보다 더 뻗친 상태였고, 샌슨은 그 삐죽한 머리에 대해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가기 전에 불을 돌아보았다.
"커피 아니면 차?" 그가 눈앞의 끓는 물이 든 냄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기델로는 끙 소리를 내며 옆에 주저앉았다.
"너희 둘이랑 계속 같이다니다가는 현장에서 응석받으면서 지내는데 익숙해지겠다. 차로 부탁해." 기델로가 반쯤 중얼거리며 말했다.
모험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기델로와 달리, 모험가는 텐트 밖을 완벽하고 깔끔한 상태로 나타났고, 샌슨이 그의 옆에 앉기 전에 건네준 따뜻한 머그잔을 기쁘게 받아들었다. 그 자리에서 아침을 먹고(샌슨이 맛이 없음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 끔찍한 염장육과 크래커였다), 식사를 끝내자 불을 끄고 캠프를 정리했다. 셋은 해가 뜨기 전에 길을 나섰고 곧 산 위에 도착했다.
호반지대를 향한 여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침 중천에 그들은 모험가가 수중 도시를 탐험하기에 괜찮겠다고 생각한 장소에 도착했다. 모험가는 금방 물 속으로 사라졌다.
모험가가 다시 뭍으로 올라오길 기다리는 일은 따분했다. 호반지대의 끝자락에 앉아 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앎에도, 그 자리에서 꼼지락거리지 않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파도가 그들의 발을 건드릴 수 조차 없을 만큼 고요했고, 푸석한 모래는 두 사람의 발장난에 더 단단하고 빽빽한 흙으로 변한지 오래였다.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니겠지?" 샌슨이 올라오는 물거품 하나 없이 두 시간이 지나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글쎄," 기델로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근심이 깃들어 있었다. "소금물 좀 마신다고 멈춰 설 사람은 아니잖아. 아마 소금물 속에서 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그런 이상한걸 찾았을지도 모르지."
샌슨은 그 말에 미소지었다. 샌슨은 그 사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친구는 얼마나 사소한 문제인가를 떠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저 물 아래 도시가 꽤 크다고 듣기는 했어," 샌슨이 동의했다. "어쩌면 그냥 거길 지나다니고 있을지도."
"그 축복이라는게 소금기로부터 눈을 보호해줄지 궁금하긴 하네." 기델로가 조용히 혼잣말했다. "아니면 엄청 불편할거야."
"나한테 묻고싶은거 있었지," 샌슨이 갑자기 생각난 의문을 던졌고, 기델로는 갑자기 전환된 주제에 그를 혼란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카스트룸 벨로디나에서. 방금 전까지 잊고 있었어."
"아," 기델로가 시선을 멀리 서 있는 성으로 돌리며 말했다. "맞아, 그 술집 싸움 꽤나 정신없긴 했지?"
"뭐였어?" 샌슨이 물었다.
샌슨은 기델로가 대답하지 않을거라 확신할 만큼 시간이 지났고, 손가락으로 모험가의 애완 고양이의 끔찍한 모습을 그리느라 바빠지기 시작할 무렵 기델로는 숨을 죽이고 입을 열었다.
"왜 나한테 쌍사당에 들어오라고 했어? 내가 그놈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알고, 알라미고 이후로 신참 병사도 별로 원하지 않았잖아."
질문은 샌슨의 허를 찔렀다. "그야-" 그는 말을 더듬었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신참 음유시인들에게 네가 좋은 리더가 될거라고 생각했어. 신참들에게 영감을 줄 지도 모르고."
"그럼 너는?" 기델로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한 줄기 실망이 담겨 있었고, 샌슨은 그 이유를 감도 잡지 못했다. "넌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리더잖아. 단 하루도 너한테 영감 받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하지만 네가 진짜 음유시인이잖아," 샌슨은 칭찬에 머리붙어 발끝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반박했다. 기델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넌 아냐?" 그가 말했다.
"내가 리라 얼마나 못 켜는지 봤잖아. 최악인데."
기델로가 코웃음쳤다. "딱 초보자가 할 만큼의 최악이었지. 그럼 난 어느 날 악기를 집어들더니 바로 소나타를 막힘없이 쳤게?"
샌슨은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아니었겠지," 그가 인정했다.
"음악을 읽을 줄 알잖아. 너 음악을 느낄 줄도 안다고. 풍경을 슬쩍 보고 나면 거기서 금방 음률을 읽어내고," 기델로가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너 이전에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을 본 적 없어. 넌 나랑 똑같은 음유시인이고, 혹시 헛소리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걔는 멍청이야,"
"고마워," 샌슨이 감동받아 말했다. "어-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마워."
"고맙다고? 그냥 사실인데 뭐." 기델로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거 모험가네 고양이야?"
또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제 기델로는 샌슨과 함께 모래로 몇 마리의 동물을 더 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앞의 물이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샌슨은 모험가의 머리가 물 밖으로 튀어나오고, 양팔을 두 사람에게 흔들자 똑바로 허리를 폈다. 그는 물가로 헤엄쳐 왔고, 근처에 다가올 때는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었다.
"어땠어?" 기델로가 다가가며 소리쳤다. 샌슨이 따라나섰다. "혹시 빈손이야? 내 정보가 별로였어?"
모험가는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주머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는 둘 옆에 앉았다. "너무 정확했어. 아마 부자 상인의 집 지하실에서 이걸 찾아냈어."
불안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샌슨의 심장이 흥분으로 쿵쿵 뛰었다. 병 안에 말려 있는 양피지는 언뜻 보기에도 매우 오래된 것 같아 보였다.
"얼른 열어봐," 기델로가 재촉했고, 모험가는 두말할 것 없이 코르크를 열려고 했다.
"잠깐만," 모험가가 말하더니 병을 샌슨에게 내밀었다. "내 손은 소금물로 엉망이잖아. 양피지를 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 "
"어," 샌슨이 친구의 손에서 병을 조심스럽게 빼내며 답했다.
코르크는 매우 꽉 잠겨 있었다. 샌슨은 마침내 만족스러운 뻥 소리가 나며 병이 열리기 전 잠시 이로 잡아당겨 볼까 생각했다. 병에서 양피지를 꺼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기델로는 몸을 가까이 기울여 양피지를 열심히 노려보았다. 모험가는 그의 젖은 소매를 걷던 참이었다.
샌슨이 해독한 대로라면, 그 종이는 아마도 매우 못 그려진 지도였을 것이다. 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용이 그려진 것 같았고 그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아래에는 시조 하나가 쓰여 있었다. 샌슨은 글자를 이해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세 음유시인과 한 드라바니아인
음악에 대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네
단 한시도 서로 떨어지지 않길 바랬네
그들의 소망과 의지 하나만으로 해내었네
살리아크의 축복으로 길게 갈라진 땅
지나간 과거와 앞으로 올 미래 사이에서
그곳 그 시간 속에 영원히 남아있으리라
- ㅡ R.플라몬돈
"아무래도 이거 드라바니아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샌슨이 글을 몇 번 읽어보곤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문제는 드라바니아가 엄청 넓다는거야." 기델로가 말했다. 마찬가지로 샌슨의 어깨 너머로 글을 읽고 생각에 잠겨 눈살을 찌푸린 채였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모험가는 몸을 꽤 말리자 둘 사이에 합류했다. 모험가는 시구를 읽고 조잡하게 그려진 그림을 쳐다보더니, 놀라움으로 눈썹을 들어올렸다.
"알 지도 모르는 친구가 하나 있어." 그가 별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샌슨은 제 친구가 이런 복잡한 문제에 간단한 해결책을 갖고 있을 때마다 매번 놀랐다. 전 대륙의 모든 사람들을 아는 것 같아보이는게 그를 구성하는 일부분이었다. “드라바니아 부정한 삼탑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이 우연히 드라바니아의 후손이다?” 기델로가 물었다. 모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끝내주네. 항상 기력이 좀 있을 때 드라바니아 출신들을 좀 만나보고 싶었거든. 걸어서 가면 몇 년은 걸릴거야. 삼탑으로 가는 에테라이트를 타야 할까?”
모험가는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며칠 이상 시간을 줄여줄거야,” 그가 동의했다.
“우리 다 가기에 돈은 충분히 있어?” 샌슨이 궁금해했다.
기델로가 코웃음쳤다. “나 하나 건사하기는 충분하고 여비도 있어. 네가 부족하면 내가 내줄게. 나중에 돌려주던가 술 사주는걸로 해.”
샌슨은 본인에게 돈이 충분히 있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델로의 말에 괜히 제 동전지갑을 확인하는 체 했다. “네 술은 네가 사야겠다,” 그가 말했고, 기델로는 실망해 한숨을 내쉬었다.
샌슨은 에테라이트를 탈 필요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인지 이동할 때의 감각에 익숙치 않았다. 존재의 본질을 풀어 거대한 에테르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광대한 우주의 먼지 한 톨이 된 기분을 느끼다 분리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 결합되는 경험을 샌슨으 평생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세 명 모두 안전하게 삼탑에 도착했다. 모험가는 제 초코보가 날아가 가버리지 않도록 한쪽에 묶어두었고, 그들은 탑에 흩어져 물어볼 드라바니안을 찾아다녔다. 1층을 맡기로 한 샌슨은 아무도 지도에 대해 아는 이가 없자 놀라지는 않았지만 내심 당황했다. 세 사람이 2층에서 다시 만났을 때 탑의 주민들은 그들을 즐겁게 견뎌줄 인내력이 바닥난 채였다. 서로의 표정을 보자 샌슨은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생각해 겁이 났다.
"운이 없었어요," 샌슨이 인정했고, 기델로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비도프니르가 안 보여," 모험가가 말했다. "이 일에 대해 아는 이가 있다면, 아마 비도프니르일거야,"
"그럼 뭐, 우린 여기서 손가락 빨면서 그 용이 오길 기다려야 해?" 기델로가 물었고, 모험가는 고개를 저었다.
"비도프니르가 적어도 2주 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
기델로가 작게 험한 소리를 뱉었다.
"어디로 갔는지 언급한 용은 없었나요?" 샌슨이 물었고, 모험가의 눈과 입가에 나타난 긴장된 안색을 보자 기분이 가라앉았다.
"모그리들 얘기를 했어," 그가 말했다.
샌슨은 애도의 바위굴 입구를 불길하단 표정으로 들여다 보았다. 그에게 솜 알 정상을 오르는 것은 즐거운 추억이 아니었다.
"올라갈까?" 기델로가 물었고, 세 사람 사이에는 같은 한숨이 흘렀다.
몇 시간이 후, 세 사람은 땀에 절은 채 솜 알의 정상에 도착했다. 샌슨은 텅 빈 하늘을 향해 떠 있는 암석들을 처음 봤을 때 척추를 타고 흐르던 짜릿함과, 동시에 동료 한 명을 빼고 이곳으로 여행을 와야 했을 때 느꼈던 뱃속의 통증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샌슨은 이번에는 기델로와 함께 이곳에 있을 수 있어 퍽 기뻤다.
"굉장한데," 기델로가 내쉬었고, 옆의 따스한 존재를 느꼈기에, 샌슨은 동의의 의미로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경치는 혹독한 땅으로 향하던 지난번 여정에도 그랬듯이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시간은 저녁에 가까웠고, 석양은 부서진 풍경을 가로질러 아름다운 그림자들을 깎아 만들어냈다. 샌슨은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잠시 시간을 들였고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기델로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또한 내버려 두었다.
샌슨과 기델로는 제 친구가 안의 모그리들과 얘기하는 동안 모그모그 고향 밖에서 기다렸고, 대화는 딱 샌슨이 생각한 대로였다. 두 사람이 모그리들과의 대화에 끼어드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듣고는, 그저 앉아 해를 바라보며 생각보다 차디 찬 미풍에 머리카락이 흔들리게 두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기델로 또한 동의하는지 얌전히 샌슨의 옆에 앉아 일기장을 꺼내 무언가를 맹렬하게 휘갈겨쓰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해서 드디어 노래를 쓸 생각하니 끝내준다," 기델로가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갑작스럽게 얘기했다. 그는 샌슨이 의문스럽다는 눈빛을 보내자 일기장을 재빠르게 닫고 멀리 치웠다.
"아직 안 썼어?" 그가 물었고, 기델로는 고개를 저었다. "난 네가 지금쯤이면 노래를 열댓개는 썼을 줄 알았는데."
"그랬을지도, 그렇지만 우리가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는 이 풍경을 보고 마냥 기뻐하기엔 머리가 너무 복잡했거든," 기델로가 어째선지 유감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땐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쓸 생각을 못했고, 만약 뭔가 썼어도 아마 끔찍하게 자기 연민에 한가득 취한 끔찍한 노래가 나왔겠지."
샌슨은 웃지 않기 위해 표정관리를 했다. 그는 둘 모두 술잔을 너무 많이 기울였던 날 기델로의 더 우울한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고, 노래를 듣던 샌슨은 너무 심하게 웃느라 부엌 바닥에 굴러다닌 적이 있었다.
모험가는 확실히 좌절한 얼굴로 모그모그 고향에서 나왔다.
"수확이 없었어?" 기델로가 물었고, 모험가는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막다른 길은 아니야. 그렇지만 쟤들이 바르 레스 광장 전역의 모그리들이 어떻게 우리를 골탕먹일지를 두고 싸우기 시작해서 그냥 나왔어."
"바르 레스요?" 샌슨이 단어가 혀에 익숙치 않자 되물었다. 그는 모험가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언어를 배우고 발음을 교정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샌슨은 그를 따라하려는 시도가 항상 조금은 바보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 모그리들과 용들의 유쾌한 동거라니," 기델로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만날 생각 하니 벌써부터 정말 기쁘네."
"엘레젠도 한 명 있을거긴 해, 적어도 그 사람이 끈기있게 따라오기만 한다면," 모험가가 지적했고, 기델로는 한숨을 쉬었다.
"진짜 끝내준다."
그들은 모그모그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느긋하게 야영지를 세웠다. 솜 알 산 등반은 샌슨의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고, 밤새도록 터덜터덜 걸어다니지 않기로 결정해서 내심 기뻤다. 기델로와 모험가도 동의하는 눈치였고, 셋 다 요리 할 불을 피우느라 고생하는 것보다는 보존식을 꺼내는 것을 택했다.
다음날 아침은 밝고 쌀쌀했고, 그들이 하얀 궁전 방향으로 출발할 때 즈음 하늘은 다시금 활기를 띄고 있었다. 샌슨은 그들이 무모한 도도 사냥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하기 시작했지만, 동료들에게 그 생각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정오 즈음 그들은 산 중턱에 와 있었고, 짧은 점심을 들었다. 샌슨은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그는 다시 짐을 챙기며 홀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그 다음 창술사가 아는 것은 귀를 찢을 듯한 날갯짓 소리와 거친 바람에 휩쓸려 바닥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었다.
샌슨은 몇 초 만에 다시 일어서 창을 쥐고 방어 자세를 취했고, 커다란 와이번이 세 사람에게 독살스럽게 쉿쉿거리는 것을 보고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쟤가 우리 친구일 것 같지는 않은데," 기델로가 소리쳤고, 와이번은 그 질문에 답하듯 발톱과 이를 드러낸 채 그에게 달려들었다. 음유시인은 화살을 발사하기 전 그 짐승의 공격 범위에서 튕기듯 벗어났다. 모험가 또한 공격을 시작했고, 샌슨은 말할 것도 없이 용에게 달려들었다.
샌슨은 드라바니아의 용과 이미 한 번 싸워본 적이 있었고,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만만치 않은 적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단 한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무시무시한 발톱과 닿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대로 게임 끝이었다.
기델로와 모험가 두 사람이 말하지 않고도 이루어내는 화음은 경탄스러웠다. 샌슨은 그를 휩쓸고 지나가며 힘을 주는 노래에 감사했다. 들려오는 노래에 감화된 샌슨은 창을 강하게 휘둘렀지만, 와이번이 귀를 찌르는 비명을 지르자 물러설 수 밖에 없었고, 크기보다 훨씬 민첩하게 달려드는 용에게 후방을 내어주고 말았다.
와이번의 꼬리가 그의 몸통을 후려쳤다; 샌슨은 뒤로 날아가며 한순간에 폐의 공기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충격이 들었고, 바위투성이 지형은 착지하는 순간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기침을 하며 숨을 들이키던 샌슨은 반사적으로 몸을 굴려 와이번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고, 순간 샌슨의 눈앞에 끔찍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기델로가 와이번에게 소리를 칠 때 둘은 너무 가까웠다. 한 번의 빠른 꼬리치기로 와이번은 샌슨에게 그랬듯 음유시인을 세게 휩쓸었고, 기델로는 짚으로 된 인형처럼 공중으로 내던져졌다. 와이번이 샌슨보다 더 세게 후려친게 분명했고, 기델로는 멀리 날아가 무겁게 착지했다. 눈 깜짝할 새 기델로는 샌슨을 지나쳐 절벽 끄트머리까지 넘어졌다.
생각할 새도 없이 샌슨은 앞으로 뛰쳐나갔고, 제 아래에 있는 바위를 쥐고 팔을 뻗어 - 간신히 양 손으로 기델로의 손가락을 잡아채자 손톱이 간절히 손목을 긁으며 파고드는게 느껴졌다. 몸의 반쯤은 텅 빈 절벽 아래로 매달린 채, 샌슨은 한 일름씩 몸이 아래로 끌려가는걸 느끼고 최대한 버티려 발을 땅으로 파고들려 했다.
"놓지마," 기델로가 소리쳤고, 허탈하다는 웃음소리에는 두려움이 묻어났다.
"알거든!" 샌슨이 마주 소리쳤고, 뒤에서 와이번이 고통에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자 순간 놀라 손을 놓칠 뻔했다. 모험가가 활을 제대로 맞춘 모양이었다.
"타이밍이 영 나쁜건 아는데, 만약 내가 떨어져서 널 다시는 못 보게 되면,"
"야 기델로, 제발 그 입 좀 다물고 너 당기는데 협조좀 해 주면 안돼?!" 샌슨이 으르렁거렸다. "뭐라도 좀 잡고,"
그 순간, 샌슨은 제 손 아래에서 기델로의 손이 움직이고, 쥐고 있던 천이 스르르 풀리는게 느껴졌다.
"빨리 나 잡아," 샌슨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기델로의 손이 장갑에서 빠져나갔고, 기델로는 그대로 떨어졌다. 샌슨의 훈련된 눈으로도 좇지 못할 만큼 눈 깜짝 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안 돼!" 샌슨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모험가가 놀라 소리쳤고, 그 소리에 창술사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모험가를 돌아보았다. 와이번은 죽은 채 쓰러져 있었고, 모험가는 다급하게 다가오다 샌슨의 표정을 읽고는 뭐라 말을 덧붙이지 않고 멈춰섰다.
“떨어졌어요,” 샌슨이 멍하게 말했다. “여기 수십 말름 위인데, 기델로가, 기델로가...”
“샌슨,” 모험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지만, 샌슨은 고개를 저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잡고 있었는데, 분명 잡고 있었는데, 그 망할 장갑때문에 손이 미끄러졌어요, 그래서...“
샌슨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시간 낭비할 새도 없다는 듯, 모험가는 곧장 가방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고요하던 하늘을 향해 세게 불었다. 잠시 뒤 모험가의 초코보가 은신처에서 불려나와 모험가 옆에 섰다. 그는 새의 등 뒤에 올라타 샌슨에게 손을 내밀었다.
“뭘 하시려구요?” 샌슨이 의아한 듯 물었지만 내밀어진 손을 잡고 모험가의 뒤에 올라앉았다.
“찾으러 가야지.” 모험가는 단호하게 말했고, 샌슨은 그의 자신감 서린 행동과 어조에 뭉클해했다.
샌슨은 잠시 초코보가 두 사람의 무게를 날며 견디지 못할까봐 잠시 걱정했지만, 그 생각은 모험가가 둘을 태운 채 땅끝까지 달려가 빠르게 하늘 아래로 내려가자 머릿속에서 날아갔다. 높은 고도에서 날씨는 비참할 정도로 추웠고, 지형지물의 보호가 사라지자 칼바람이 드러난 피부를 세게 때렸고, 적어도 한 번 이상 그들을 근처에 떠있는 섬까지 밀어내 부딪히게 할 뻔했다. 샌슨은 몇 번 자신이 바위와 거의 부딪힐 거라고 생각했다.
몇 년 같던 긴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바로 아래에 떠 있는 바위와 섬들을 발견했고, 모험가는 그들을 땅 위에 늘어선 바위들 옆에 조심스레 내려섰다. 곧장 기델로가 어떻게든 살아있다는 흔적을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몇개의 와이번 둥지가 섬 위에 걸려 있었고, 샌슨은 눈에 밝은 색이 얼핏 들어오자 심장이 목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저기, 둥지에 걸려 있어요,” 샌슨이 소리쳤고, 그의 말은 바람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스카프!”
모험가는 둥지 쪽으로 똑바로 걸어왔고, 그들이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샌슨은 행복감이 차올랐다.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초코보와 비슷한 크기의 와이번이 죽은 채 입구에 늘어져 있었고, 화살 하나가 두개골에 박혀 있었다. 그 시체 아래에 남아있는 음울한 것들은 와이번의 알들인 것 같았다. 기습을 당했다는게 더 그럴듯하게 생각되긴 했지만, 샌슨은 그 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할 경황도 겨를도 없었다.
둥지의 입구는 다행히 모험가가 제 초코보를 세워둘 수 있을 만큼 컸고, 단순한 서식지의 구조에도 불구하고, 샌슨은 초코보의 등에서 급하게 내리느라 거의 굴러떨어질 뻔했다.
둥지 안쪽은 햇빛이 비치지 않아 정확히 보기 힘들어서, 샌슨은 둥지의 구석구석을 더듬으며 돌아다녔고 모험가도 반대편에서 같은 방식으로 둥지를 수색했다. 잠시 후 샌슨의 손가락에 무언가 사각형의 부드러운게 닿았고, 샌슨은 배에 무언가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물건을 집어들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기델로는 아직 찾지 못했는데 일기장은 여기 있었다. 샌슨은 눈물이 나려는걸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울며 무너지는건 혹시 남았을지 모르는 귀한 시간을 낭비할 뿐이었다.
괴로워하는 샌슨을 눈치챈 모험가는 샌슨의 손에서 일기장을 가져가 휘 둘러보았다.
“이건 기델로의... 일기장입니다,” 샌슨이 목에서 턱턱 걸리는 말을 뱉으며 설명했다. 모험가가 물건이 무엇인지 눈치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샌슨은 그 침묵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기델로는 거기에 노래도 쓰고, 생각도 꽤..."
모험가는 일기장을 둥지 입구로 가져가 기델로가 마지막으로 쓴 페이지를 찾아 넘기기 시작했다. 그는 글자들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샌슨에게 일기장을 다시 넘겨주며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쓰는 글일지도 모르고, 아마 몇십년, 몇백년, 혹은 천년을 다른 사람 손에 발견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용감한 친구들이 죽은 날 발견할수도 있고. 근데 그게 얼마나 걸릴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익숙한 글씨는 샌슨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익숙한 손글씨와 한껏 감상적인 설명은 기델로가 손아귀에서 빠져 나간 이후로 처음으로 제대로 숨을 쉬고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다.
물론 이렇게 가는건 정말 바보같은 일이다. 흔해빠진 짐승의 둥지에서 한 줄기 구조를 기다리다 죽는거 말이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망할 해결책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남은 장갑들은 다 불태워 버릴테다.
샌슨한테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 다음은 잉크가 종이 전체에 번져 크게 얼룩져 있었다.
"나한테 뭘?" 샌슨은 중얼거렸다.
모험가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죽을 거라고 확신한 걸 보면 상황이 많이 안 좋았나봐."
"그래도 이렇게 글을 남겨둔 걸 보면 상황이 생각보다는 좋을지도 모릅--"
샌슨은 멈칫했다. 손가락에 묻어난 무언가 차갑고 끈적한 것을 막 알아차린 참이었다. 샌슨은 펄쩍 뛰며 갑작스럽고 불쾌한 감각에서 팔을 떼고 멀어지려 했고, 손을 덮고 있는 색은 -
"안 돼," 샌슨이 헛숨을 들이켰고, 그 소리에 돌아본 모험가는 그의 손의 피들을 바라봤다.
"그거 피야?" 모험가는 답을 아는 듯 하면서도 샌슨의 손을 보기 위해 당기며 물었다. "그래도 기델로 꺼라고 확신은 못 하잖아."
샌슨의 머릿속에서는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퍼즐이 꽤나 끔찍한 상상과 함께 맞춰지고 있었다. 둥지의 입구부터 시작해서 머리에 화살이 깊게 박힌 채 죽은 채 누워있는 와이번까지.
기델로는 여기 없지만 물건들은 있을 때,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또 떨어졌었나봅니다." 샌슨이 음높이 없는 어조로 늘어진 밧줄과 드라바니아 구름바다 아래를 내려다 보며 멍하니 추론했다. 패닉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맙소사, 저 아래 섬은 얼마나 또 아래에 있을까요? 이 높이에서는 도저히 -" 샌슨의 떨리는 숨을 어깨 위에 올라온 손이 진정시켰다. "꼭 찾아낼 수 있을거야," 모험가가 좌절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은 또 한번 모험가의 초코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안개를 뚫고 뾰족한 나무 꼭대기를 보기 전, 한 얄름씩 내려갈 때마다 샌슨의 뱃속도 같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다음 땅은 다행히 치명적일 정도로 높이 차가 크지 않았다.
그들이 내려선 섬은 가시 나무의 흔들리는 소리가 무성하고 숲이 너무 빽빽해 내릴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험가가 초코보를 착륙시킬만큼의 작은 땅을 발견해 등에서 내리자 마자, 샌슨은 제일 걱정하던 바를 말했다.
"만약 여기로 떨어졌다면, 어떻게 기델로를 찾죠?" 샌슨이 또 한번 그를 숨막히게 짓누르기 시작한 패닉을 억누르며 물었다. 허나 말이 채 입 밖을 벗어나기도 전에, 나무들 위로 초록색 빛줄기가 쏘아올라오자 샌슨은 찔린 듯 움찔했다. 험한 소리를 뱉으며 샌슨은 연기와 반짝이는 폭죽들을 따라가다 나무에 화살이 깊숙히 박혀 있는걸 발견했다. 화살에 붙어있는 그리다니아 폭죽은 아직도 불쾌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저기," 모험가가 하늘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몇 갈래의 초록색 연기가 그들의 남쪽에서 나타났다.
"기델로일 겁니다, 그래야만 해요," 샌슨이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건너뛰며 말했다. 속으로는 그 신호가 제 친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유를 천 가지쯤 대면서도 안도감이 부풀기 시작했다. "기델로를 찾으면 여기로 데려올테니 그럼 저희는... 상처가 얼마나 나쁜지 보고 치료 해 주기로 해요." 상처가얼마나 나쁜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그러나 샌슨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야영지 세우고 있을게," 모험가가 말했다. 모험가는 벌써 초코보 가방에서 침낭을 찾고 있었다. 샌슨은 고개를 끄덕이곤 엉킨 수풀 사이를 헤쳐나가는 불쾌한 일을 시작했다. 적어도 수십년은 족히 손을 타지 않은 채 자란 듯한 덤불들 때문에, 샌슨이 효율적인 방식으로 길을 뚫는건 거의 불가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땀에 흠뻑 젖었는데 한 풀름도 간신히 나아간 것 같다고 샌슨은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샌슨은 거의 반강제로 울퉁불퉁한 녹지를 기어가다시피 하고 있었고, 그 때 그는 멀리서 기델로의 부츠를 발견했다.
"기델로!" 샌슨이 덤불들을 밀며 가지들이 피부를 찌르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달려나갔다. 친구로부터 조금만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면, 기델로를 다시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기델로는 얼핏 보기에도 비참한 상태였다. 죽은 소나무의 두꺼운 줄기에 기대어, 외투를 벗어 몸통을 감싸고 있었다. 얇은 천은 배어져나온 검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얼굴 - 맙소사, 얼굴은 잿빛이었고, 베이고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샌슨이 다가오자 떠진 눈은 어둡고 흐렸다. 그의 활은 옆에 놓여 있었고, 사용하지 않은 폭죽 몇개가 가방 입구에서 흘러나온 채였다.
"내가 꿈을 꾸나?" 기델로가 갈라진 입술로 웃으며 물었다. 그런 몰골에도 입담은 전혀 죽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자 샌슨은 마주 웃어보였다.
"아니, 나 여깄어. 도와줄게 - 움직일 수 있겠어? 모험가님은 근처에 있어, 가면 네 상처도 치료할 수 있을거야,"
기델로가 혀로 입술을 축이고, 눈살을 찌푸렸다. "갈비뼈 한두개가 부러진 것 같긴 한데... 그치만 어... 네가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
기델로를 이끌고 그가 만들어둔 길을 돌아가는 것은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샌슨은 혹여 제 친구를 더 다치게 할까 겁먹은 상태였고, 기델로는 약해진 상태로는 움직이는데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결국 기델로는 도중에 기절했고 - 본인에게는 잘 된 일이었지만, 제 행동이 기델로를 더 다치게 하는건 아닌지 전전긍긍하던 샌슨을 더 느려지게 만들었다.
가장 빽뺵한 덤불을 그를 끌고 지나간 뒤에서야, 샌슨은 남은 길 동안 샌슨을 안고 갈 수 있었다. 그쪽이 훨씬 더 쉽고 빠르긴 했지만, 샌슨은 매 걸음마다 혹시 늦었을까봐, 혹여 너무 느렸던 것은 아닐까, 설마 너무 제 감정에 사로잡혀 기델로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아닐까 두려워했다.
한참 후 샌슨은 숲을 뚫고 모험가가 야영지를 만들어 둔 작은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샌슨이 제 몸과 기델로를 덤불에서 빼내고 있을 때 이미 초코보의 안장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기델로는 - "
"살아 있어요," 샌슨은 모험가가 문장을 끝마치기도 전에 답했다. 그는 기델로를 조심스레 침낭에 내려놓고는, 친구를 이끌고 4분의 1말름을 걸어온 노력에 지쳐 무릎 꿇고 주저앉았다. "하지만 상태가 안 좋아요; 피를 이미 많이 흘렸고 뼈도 몇 곳 부러졌어요. 모르겠어요 - 이대로 버틸 수 있을지 - " 그는 떨리는 숨을 진정시켰다.
"괜찮을거야," 모험가가 마침내 찾던 것을 꺼내들며 샌슨을 안심시켰다. 천구의가 모험가의 손 위에서 붕 떠오르며 깨어났다. 카드 한 스택이 느릿하게 천구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모험가는 춤추듯 흐르는 줄에서 카드 한 장을 뽑기 위해 눈살을 찌푸리며 집중했다. 그는 카드를 보더니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고, 샌슨을 향해 눈을 돌렸다.
"외투 좀 벗겨줘. 내가 상처를 치유할 수는 있는데, 최대한 빨리 해야 할 것 같아."
샌슨은 뭐라 따지기에 너무 놀란 상태였다. 빠르게 다리 홀스터에서 칼을 꺼내 기델로의 몸통에 들러붙은 천을 잘라냈다. 피비린내는 상처가 드러나자 더 심해졌다. 세 줄의 깊은 상터가 늑골부터 옆구리까지 이어져 있었고, 상처들이 가슴 전체에 점점이 퍼져 있었다. 그의 내장이 땅에 흩어지지 않은게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맙소사," 샌슨이 다시 한번 기델로가 기절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숨을 들이켰다. 이런 상태에서 의식을 붙든 채 깨어있는건 절대 즐거운 시련일 리가 없었다.
모험가는 기델로의 배 위에 손을 조심스럽게 올려 놓고 표정을 찡그리며 찢겨진 살이 벌어지는걸 보며 중얼거렸다. "내상이 심해. 내가... 뼈나 상처는 고칠 수 있지만 이건 - 샌슨, 미안해. 나 이걸 고칠 수 있을 만큼 실력있진 않아."
샌슨이 아랫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그들은 근처 정착지까지 몇 말름이나 멀어져 있었다. 기델로가 이 상태로 돌아가는 길을 살아서 견딜 수는 없었다.
"저희가 할 수 있는게 정말 없을까요?" 그가 기델로의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무력감 그 이상에 치를 떨며 물었다. 신이시여, 시간을 되돌려 이 일을 없던 일로 하기 위해서라면 샌슨은 못할 게 없었다. 영원의 장송가은 저주받은 곡이었다; 이만큼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모험가가 천천히 볼을 두드리며 말했다. "기델로를 구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아. 모그모그 고향이 근처에 있고, 모그리들이 마법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본 적 있어. 반나절 안에 돌아올게,"
"모그리들이요?" 샌슨이 놀라서 물었다. "모그리들이 뭘 할 수 있죠?"
"누군가 기델로를 도울 수 있다 하면 분명 걔네들일거야," 모험가가 말했고, 자신감 넘치는 말은 샌슨을 깊이 흔들어 놓았다. "걔네가 나한테 빚진 게 좀 있거든."
모험가는 기델로의 부러진 갈비뼈를 치료하고 조금이라도 출혈을 막기 위해 몸에 압박붕대를 감았다.
"새벽 전에 돌아올게," 모험가는 그렇게 약속하고는, 샌슨이 눈 깜짝할 사이에 초코보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샌슨의 뱃속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동안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 그는 기델로의 잿빛 볼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알아차렸다. 열이 난다는 신호였다. 그때부터 물이 흐르는 곳이나 냉찜질도 없이 체온을 내려두려는 사투가 시작되었다. 샌슨은 자신이 마시던 물을 옷에 적시는 것으로 타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는 것 보다는 나았다.
기델로는 시간이 갈수록 죽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고, 샌슨은 몇 번을 저도 모르게 기델로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샌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곤 모험가가 돌아오기 전까지 멍하니 기다리며 기델로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것 뿐임을 알았다. 신이시여, 샌슨은 무력감에 멍하니 좌절했다. 모험가는 모그리들이 도울 수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만약 모험가가 틀렸다면 어떡하는가? 그들이 돌아오고 모그리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떡하는가? 만약 돌아왔는데 이미 늦었으면? 만약에, 혹시라도, 어쩌면...
상상의 흐름이 더 꼬이기 전에, 샌슨은 머리 위에서 날갯짓 소리를 늘었다. 모험가는 모그리 한명을 이끈 채 초코보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쪽은 모그덴," 모험가가 다급하게 말했다. "모그덴, 샌슨이야."
모그덴은 기델로 위로 날아올라 상처들을 보더니, 그 광경에 끔찍하다는 듯한 으 소리를 내었다.
"이 사람 용과의 싸움에 휘말렸던 것 같아 쿠뽀," 모그리가 흥얼거리며 말했다.
"그랬었어, 그건 내가 벌써 얘기했잖아," 모험가가 쏘아붙였다. 샌슨은 그가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답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제발 그냥 좀. 치료해줘."
모그덴이 다시 흥얼거렸다. "대가는 얼마나 줄거야?"
"대가는 없어," 모험가가 팔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나는 너희 마을이 불길에 휩쓸린걸 막아준 거에 보답해 달라는거야. 빨리. 당장. 치료해줘."
"시도해볼 수는 있지, 쿠뽀! 바로 치료해 줄게, 쿠뽀!" 모그덴이 노래했고, 갑자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그의 주변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고, 뭉쳐진 에테르가 덩굴로 늘어져 기델로의 벌어진 상처로 향했다. 모그던은 늘어진 기델로 위를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며 흥얼거렸고, 천천히, 천천히, 그의 가슴께와 옆구리의 상처가 매끄럽게 꿰메지기 시작했다.
"다 끝났어, 쿠뽀!" 모그던이 모험가의 초코보 위로 날아가며 지저귀었다. "깨어나면 말끔하게 나아 있을거야! 하지만 그가 라임을 붙여서 말하기 시작하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쿠뽀."
"정말 전부 다 - 나았다고 확신합니까?" 샌슨이 망설이듯이 물었다. 모그덴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샌슨을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날 뭘로 보는거야 쿠뽀, 돌팔이? 가짜? 아니면-"
"방금 그 얘기는 고맙다는 거야," 모험가가 모그리의 끝나지 않는 헛소리에 대고 말했다. "집에 데려다 줄까?"
"오, 그럴 필요 없어 쿠뽀," 모그던이 멍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돌아가는 길을 안다 쿠뽀. 내가 또 필요하다면, 나는 늘 있던 곳에 있을거야, 쿠뽀!" 그는 수풀들 위로 떠오르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기델로는 모그던이 떠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깨어났다. 그의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함"과 "아픈 듯 창백함"의 중간 정도까지 돌아왔고, 그는 매일 잠에서 깨어나듯 의식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즉, 꽤나 극적이었다.
"나 꼭 곰이랑 싸웠던 것 같아," 그가 끙 소리를 내었다.
"곰이 아니라 용이었지. 근데 내가 보기에 발톱이 네 배를 찢어놓을 때 느낌은 용이나 곰이나 꽤나 비슷할 것 같긴 해," 샌슨이 반사적으로 답했다 기델로가 제 배 위에 손을 올려놓자 제 대답에 금방 후회했다.
"맞다," 기델로가 중얼거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건 네가 커다란 노란색 달팽이처럼 풀숲에서 튀어나오는 거였거든. 내가 헛것을 보는 줄 알았어. 죽은 줄 알았다니까."
"도와주겠다고 했었잖아?" 샌슨이 기델로가 묘사한 자신의 노골적인 모습에 모험가가 킥킥거리는 것을 최대한 무시하며 말했다.
"진짜 해냈네 그치," 기델로가 감탄하며 말했다. "내가 너 정말 굉장하다고 말했지. 이제는 내 말 믿어?"
샌슨은 핏기가 가시며 고개를 돌렸다. "나한테 고마워 할 그런게 아니야. 모험가님의 치유 마법이 없었으면 넌 지금쯤 내 옆에 없었을 테니까. 모그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델로가 충격받은 얼굴과 흐릿한 눈으로 제 친구를 돌아보았다. "너 치유 마법도 할 줄 알아? 샌슨, 쟤가 우릴 속이고 있었어."
모험가는 거기에 대고 코웃음을 쳤다.
"내가 못 박아 주자면 아니거든. 모험가님은 하고 싶은거라면 다 해도 상관없어."
"빛의 전사, 한집 살림으로는 절대 만족을 못 한다는거지," 기델로가 나무라듯 중얼거렸다.
"얘가 집에 갈 때까지 쭉 이 상태였으면 좋겠네," 모험가는 기뻐서 목소리가 떨릴 지경이었다. "이 지경 다음에는 아무래도 오락이 좀 필요하잖아."
기델로가 꽥 소리를 내자 샌슨은 한숨을 쉬었다.
"집?! 하지만 영원의 장송가는? 불멸은?!" 기델로가 샌슨에게 다가가 놀라울 정도로 세게 팔을 그러쥐었다. "우리가 아직 집에 안 갈거라고 얘기해주라."
샌슨은 제 팔에서 기델로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떼냈다. "다음에 다시 올 수도 있잖아," 그는 다독였지만, 기델로는 절대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치만 거의 다 왔잖아," 그가 불평했다.
"그리고 넌 거의 반대편에 계신 하이델린 뵐 뻔 했거든, " 샌슨은 날카로워진 신경에 저도 모르게 맞받아쳤다. 기델로는 부끄러운 듯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샌슨의 팔을 놔 주었다. 샌슨의 기분은 즉각 바닥까지 추락했다. "기델로, 정말 미안, 그렇게 멋대가리 없게 굴려던건 아니었어. 그냥 좀 피곤하고 아직 좀 겁났었나봐. 좀 쉬고 내일 얘기하면 안될까?"
"물론이지, 달링," 기델로가 말했다. "뭐든지 다 얘기해줄게."
모험가가 둘에게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주기 위해 멀리 돌아서며 "달링?"하고 중얼거리는걸 들은 샌슨은 귀끝까지 빨개짐을 느꼈다.
일행은 어스름이 수평선에 질 즈음, 해가 그들의 발 밑 구름 아래로 지며 진한 그림자를 땅에 드리울 때 모그모그 고향에 도착했다.
약간의 논쟁과 모험가가 쿠뽀 열매를 찾아주겠다는 거래를 하는데 거의 일각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모그리들은 결국 세 사람이 자기네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걸 허락해 주었다.
"그냥 다른 곳에서 야영했으면 이만큼 머리 아프진 않았을텐데," 샌슨이 말했다.
"음,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가 구름솜풀 위에서 언제 또 자보겠어," 기델로가 답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이거 정말 끝내주거든."
샌슨은 편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모그리 합창대가 끔찍한 O Holy See를 20얄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연주 연습을 하고 있지만 않았으면 편하게 쉴 수 있을 거라고 답하려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고개를 돌린 샌슨은 기델로의 표정을 보고는 멈칫했다.
"나 끔찍한 바보같았지." 기델로가 부드럽게 말했고, 샌슨은 작은 목소리에서 그만이 듣기를 바랬음을 알아차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은데," 샌슨이 말했다. "'끔찍한'이 날 설명하는 단어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독하다거나, 희망이 없다거나 하는게 맞을 것 같네."
기델로가 생각에 잠겨 흠 소리를 내었다. "내가 네 얘기를 할 때 쓸 말은 절대 아닌 것 같은데. 판떼기 마냥 딱딱하긴 하지만 지독하거나 희망이 없다거나 한건 전혀 아니거든."
"그리고 너도 끔찍한거랑 거리가 멀거든. 바보는 맞지, 근데 끔찍하다? 절대 아니야."
"우리 좀 봐," 기델로가 중얼거렸다. "끔찍하지도 지독하지도 희망없는 것도 아닌 한 쌍의 바보들이 자기들의 바보같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네."
"바보 한 쌍이 또 뭘 할 수 있겠어?" 샌슨이 물었다.
"세상을 구하다 죽기?" 기델로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가, 샌슨의 핏기가 가신 표정에 바로 물러섰다. "물론 그 바보들도 목숨을 거는 것 보다는 침대에 누워서 쉬는걸 택할 테지만.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 구름솜풀은 쌍사당에서 줄 그 어떤 침대보다 몇 말름은 더 편안하다고."
"전에도 얘기했지만 너 네 의지로 거기 지원했어," 샌슨이 말하고는 손바닥으로 하품을 참았다.
"네가 세번이나 나한테 친절하게 '얘기해 주니까' 하는 말인데, 난 거기 멋대가리 없는 놈들이 널 싸구려 와인처럼 밀어버리려는 꼴을 도저히 못 봐주겠길래 널 지켜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원한 거야. 이제보니 다 때려치고 어디 산 꼭대기에서 사는게 더 나을 것 같네," 기델로가 위협했다. "듣자하니 이맘때 고지 드라바니아가 그렇게 살기 좋다던데."
샌슨은 그의 뒤에서 자고 있는 모험가를 생각해 조용히 웃었다. “그런데 네가 그만두면 누가 날 지켜봐줘? 너는 확실히 아닐테고. 그럼 나는 또 어딘가에 인질로 잡히고 쌍사당이 내가 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마녀의 비탈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거랑 별개로 용이 가득한 산에서 은둔하면서 사는거 꽤 괜찮을 것 같네.”
“용들은 다 멋진 것 같아 쿠뽀,” 느릿하게 붕 떠서 옆을 지나가던 모그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가끔 용들은 내 쿠뽀 열매를 구워주거든 쿠뽀.”
“아무도 너한테 안 물어봤어,” 기델로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러고는 관심을 다시 샌슨에게 돌렸다. “그리고 넌 네가 곤란한 상황에 봉착하자마자 내가 구하러 올 거라는거 알잖아. 이번에는 누구야, 해적? 난 항상 사랑과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해적하고 한번 싸워보고 싶었어.”
“유령 해적들로도 만족할거야?” 샌슨이 모험가가 오사드로 가는 길에 겪었다는 모험을 떠올리며 궁금해했다.
“아마도,” 기델로가 말했다. “동방으로 여행이라도 가려고?”
“지금은 그럴 생각 없어. 난 이 대륙으로도 꽤 만족하거든. 어쨌든 고마워. 그리고 계속 궁금했던 건데,” 샌슨이 용기를 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을 입 밖에 내었다. “네가 와이번 둥지에 갔던 것 까지는 아는데, 어... 정확히 어떻게 했어? 일천 풀름쯤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전략 세우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기델로가 기억을 되짚었다. “나 속사 속도가 빠르거든. 그래서 떨어지면서 와이번 둥지에 활을 쐈고, 정말 신이 도왔는지 모르겠지만, 화살이 박혔고, 둥지가 다행히 안 부러지고 내 무게를 견뎌줬어. 그래서 화살에 매달렸다 거길 기어 올라가서, 스카프는 바깥에 묶고, 거기 잠시 앉아 있었어. 그 다음은 너도 알아낸 것 같던데.”
“와이번이랑 싸우고, 그러다 졌고, 어쩌다 다시 떨어졌다?” 샌슨이 추측했다. 기델로가 억울함에 입술을 물었다.
“나 안 졌거든. 내가 그 녀석 죽였단 말이야,” 그가 반박했다. “그 용이 죽어가면서 엄청나게 몸부림을 치더라고. 날 또 꼬리로 낚아채더니 공중제비를 돌아서 또 떨어졌어..”
“그거 널 거의 반토막 내기 전이야 후야?” 샌슨이 기델로가 열받는다는 듯 쏘아붙이는 목소리에 즐거워하며 물었다.
“있잖아, 나 방금 마음을 바꿨어. 구조가 필요한 사람은 아무래도 나인 것 같으니까 너 다시는 안 구해줄거야. 이제부터 네가 구조대고, 내가 구조받을거고, 우리 둘 다 어떤 칼바람 부는 산꼭대기에 집을 구한 다음 우리 둘 중 누구도 서로를 구할 필요가 없도록 절대 모험을 떠나지 않는거지. 행복해?”
“말도 안 돼,” 샌슨이 지적했다. 그러다 한 가지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집은 그럼 하나야 둘이야?”
“그건 상관 없지,” 기델로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불평했다. “지금 재밌어? 한 사람이 거의 죽다 살아났는데 보상으로 죽어라 놀리고 있다니.”
“나야 재밌지,” 기델로가 삐죽거리자 샌슨이 웃었다. “네가 있잖아. 찢어져 죽지 않고 살아서, 여기 옆에 있으니까.”
그러자 기델로의 불평은 눈 녹듯 녹아 부드럽게 변했다. “걱정시켜서 미안,” 그가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또 이런 일 없게 조심할게.”
가슴 속을 뭉클하게 한 온기에 또 바보 같은 말을 할까봐 샌슨은 화제를 돌려 물었다. “그래서 떨어졌다. 그 다음은 뭐였어?”
“내 생각엔 그랬던 것 같아, 어 젠장, 이건 아닌데,” 기델로가 말했고, 샌슨은 피식 웃었다. 입술을 올려 웃으며 기델로가 계속했다. “이번에도 근처에 앉아있어야 했어, 그 전과는 달리 피가 엄청 나고 상당히 아프다는게 문제였지만. 그런데 그때, 짜잔, 머리 위로 보라색 초코보가 지나가는걸 우연히 봤거든. 너희 두 사람이 내 위치를 찾아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길래, 내 위치를 알릴 법한게 있는지 가방을 찾아봤어. 다행히 폭죽이 있었고. 그래서, 음, 네가 날 찾아냈고, 그 다음에는 아 적어도 내 친구 품에서 죽는구나- 했던 거 말고는 딱히 생각 안 나.”
“기델로,” 샌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제발 부탁인데 내 앞에서 울먹이지 말아주라.” 기델로가 말했다. “이 상황이면 나도 네 옆에서 같이 울 거 뻔하거든, 그럴 바에야 내 코끝에 폭죽 하나씩 끼우고 불 붙이고 있을래.”
“애초에 가방에 폭죽을 왜 그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는거야?” 샌슨은 기델로가 부탁한대로 울먹이는 대신 물었다.
기델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 오늘 엄청 궁금한거 많네,” 그가 샌슨의 불만 스러운 표정에 한숨을 쉬며 답했다. “항복. 네가 그거 나한테 올해 불꽃축제 때 줬었잖아. 그냥 갖다 버리기는 아까운 것 같아서 갖고 있었어. 아까도 말했듯이 나도 무턱대고 가방을 뒤적이기 전에는 넣어둔 거 잊고 있었어.”
샌슨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따뜻한 것이 아릴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샌슨은 기델로와 불꽃 축제에 갔을 때, 폭죽을 너무 많이 사는 바람에 폭죽의 절반 정도를 떠넘겼던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기델로가 진작에 전부 버렸을 거라 생각했었다.
“오,” 그가 숨도 안 쉬고 말했고, 기델로는 눈을 굴렸다.
“이 모그리 마법이라는거 빨리 없어지면 좋겠네,” 기델로가 불평했다. “이거 때문에 네 앞에서 너무 솔직하게 약한 소리까지 다 하고 있는 것 같아.”
난 네가 솔직하게 약한 얘기까지 다 하고 있어서 좋은데,” 샌슨이 진심으로 말했다. 기델로의 볼부터 귀끝까지 굉장한 분홍색으로 달아올랐다.
"난 아냐,"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완전 바보가 된 기분이란 말이야."
"내가 보기엔 그걸 우정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샌슨이 설명했고, 그 말에 기델로는 솜풀 한줌을 집어 던졌다.
"그 솜풀 꼭 물어내라 할 거다 쿠뽀," 모그던이 그들 왼쪽을 고요하게 스쳐지나가며 위협했다.
샌슨이 코웃음쳤다. "우리가 당장 자야하는건 아는데, 나는 모그리들이 이렇게... 주변에 떠다니는 동안에는 도저히 못 잘 것 같아," 그가 불평했다. "저 성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순간 성가대는 We Wish You a Merry Starlight를 전력을 다해 고발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끔찍하게 편곡된 버전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냥 눈 감고 쟤네가 없다고 생각해," 기델로가 졸린 듯 중얼거렸다, "하, 나도 쟤네가 여기 없었으면 좋겠네..."
조용한 코골이 소리가 그의 옆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샌슨은 옆으로 몸을 돌려 슬쩍 바라보았다. 기델로의 안색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조금 전 까지 샌슨을 겁먹게 했던 잿빛 회색 기운은 남아있지 않았다.
모그리들과 모험가만 그의 뒤에 없었다면, 샌슨은 아마도 손을 뻗어 - 어디까지 할 수 있었을까? 기델로의 머리칼을 이마까지 쓸어넘기고, 손가락으로 눈썹 사이부터 콧잔등까지 부드럽게 쓸어 넘길 수도 있었을까? 늘 여러 번 생각해 왔듯이 기델로의 입술에 부드럽고 친밀하게 키스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많은 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대신에, 샌슨은 잠이 제 비겁함을 저주하며 잠에 빠져들 때 까지 제 친구를 바라만 보았다.
이른 아침 샌슨은 그의 위에서 자는 몇 명의 모그리들의 무게 때문에 깨어났다. 그들은 훨씬 더 편안할거고 모그모그 고향에 한가득 흩뿌려진 구름솜풀들보다 샌슨의 위가 더 나은 침대라고 결정한 것이 분명했다.
"달의 수염이여," 샌슨은 혼잣말로 신음했다. 그 옆에서 기델로가 헛웃음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서 얘네 좀 치워줄래, 아니면 그냥 거기 앉아서 웃고만 있을래?"
"내가 이 쬐끄만 털복숭이 도깨비들을 볼 때마다 목을 조르고 싶어하지만 않는다면, 방금 그거 좀 귀여웠을 것 같긴 한데." 기델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제 위에서 자고 있던 모그리 하나를 깨우곤 깨어난 모그리가 무언가 무례한 말을 중얼거리자 손을 휘휘 저어 내쫓았다. "안타깝네. 원래 널 베개로 쓰는건 내가 하려고 했었는데, 쟤네가 먼저 선수쳤어."
"왜 다들 내 위에서 자고 싶어하는데?" 샌슨이 두명의 모그리를 그의 허벅지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모험가님은 어디로 갔어? 그분도 널 도와줄 수 있었을텐데."
"내가 알기론 쿠뽀 열매 가지러 갔어. 그 친구가 돌아올 때 까지 우린 여기 갇혀 있어야 하니까, 그 전까지 더 쉬고 있겠다 하면 뭐라고 할래? 난 내가 여섯 시간 넘게 자본지 몇년 됬다는거 알거든. " 기델로는 그를 성실하게 무시 중인 샌슨을 삐죽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싶으면 여기서 계속 뒹굴고 있어도 괜찮아." 그가 일어서며 답했다. "난 뭔가 할게 있어서."
"뭔데?" 기델로가 몸을 일으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모그리들이랑 캐롤이라도 부를거야?"
"글쎼," 샌슨이 어깨 너머를 돌아보며 말했다. 샌슨이 솜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 바닥에 착지했다. “와서 맞춰볼래?”
소리를 죽인 쿵 소리가 그가 얻은 대답이었고, 창술사가 더 잘 보기 위해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자, 기델로의 어깨 모서리가 구름솜풀에서 삐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웃음을 참으며, 그는 날카로운 바람이 옆구리를 뚫고 거친 모래길이 부드러운 잔디로 덮인 곳까지 걸어올라갔다.
바깥은 끔찍하게 추웠지만, 햇볕은 따스하고 어제까지 그의 코를 얼려버릴 듯 차가웠던 산들 바람도 지금은 많이 따뜻해져 있었다. 샌슨은 손발 끝 어디도 위험할 일이 없도록 늘어선 바위 중 하나의 뒤쪽을 골라 누워 눈을 감았다.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샌슨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들을 안내 해 줄 것은 더이상 없었고, 목숨을 걸어야 했으며, 샌슨은 노래 하나와 맞바꾸는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한 사람을 잃을 뻔했다.
“아, 알겠다.” 기델로가 그 위의 어딘가에서 말했고 그 소리에 샌슨은 펄쩍 뛰었다. 그가 눈을 뜨자 기델로는 피식 웃고 있었다. “네 계획이란건 저 음울하기 짝이 없는 동굴 대신 햇볕 아래에서 계속 쉬는거였어. 그냥 말하지 그랬어?”
“여기 엄청 춥잖아,” 샌슨이 답했다. “네가 여기서 벌벌 떨면서 쉬고 싶어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넌 여기가 좋아?”
샌슨이 잠시 흠 하는 소리를 내었다. “아니, 그렇지만 저 음침한 땅굴보다는 나아.”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게다가 모그리들이 가끔 내 얼굴 위에 앉더라고. 그거보단 낫지”
기델로가 끔찍하다는 듯 소리를 내었고, 샌슨은 그의 옆 바닥에 다른 남자가 몸을 숙여 눕자 온기를 느꼈다. “쟤네가 네 얼굴뼈를 부수지 않게 보호해야겠네,” 그가 농담했다, “내 차례가 아직 안 왔다니.”
그의 배 위로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았고, 샌슨이 눈을 슬쩍 뜨고 바라봤을때, 기델로가 제 배 위에 머리를 올려둔 걸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젠 내가 베개야?” 그가 물었다.
“응”
“네가 이렇게 잠들면 날 모그리들로부터 어떻게 지켜줘?”
“쉿, 베개는 말 안 해.”
샌슨은 한숨을 쉬었지만 은혜를 베풀기로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델로의 숨소리는 추위에도 잠든 이의 고른 소리로 바뀌었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손을 둔하게 만들어서인지, 아니면 이 넓은 공간에 둘 뿐이라서인지(약 30풀름쯤 너머에 한 모그리 하나가 쿠뽀 열매를 두고 노래하고 있는건 제쳐두기로 했다), 혹은 기델로의 손가락이 제 배 위에 얌전히 깍지 낀 채 놓여 있어서인지, 그마저도 아니라면 샌슨이 마침내 어젯밤에 하지 못한 일을 할 용기가 생겨서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샌슨은 손을 들어 기델로의 이마 위에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이마에 올려진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올렸다. 머리카락은 샌슨의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엄청 더러울 것임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샌슨은 기델로가 기절해 있었을 때 간호하며 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기던 때를 떠올렸다. 샌슨은 멍하니 기델로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이 남자가 저 모르게 씻기라도 한걸까 궁금해했다. 엘레젠이 휴런보다 두피에 땀과 기름기가 덜한가 하는 궁금증으로 이어졌고, 그리다니아에 돌아가면 조사를 해볼지 마음속으로 새기며 그가 원하는 정보를 가졌을 제목의 책을 찾기 위해 도서관 분류표를 머릿속으로 넘기고 있었다.
샌슨은 모험가가 몇몇 모그리들에게 쫓겨다니며 비탈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오며 두 사람에게 시간이 다 되었다 큰 소리로 소리치기 전까지 제 생각에 잠겨 멍하니 있었다.
기델로는 깨어난 후에도 샌슨이 좌절과 후회를 동시에 느끼며 손가락을 뗄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기델로는 그 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기델로가 그를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음유시인의 어조와 표정에서 샌슨에게 익숙치 않은 부드러움이 묻어났고, 샌슨은 당장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로 패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었다. 기델로는 늘 그렇듯 매혹적인 사람이었고, 샌슨은 늘 그렇듯 매혹되는 쪽이었다.
"네 머리카락." 샌슨이 한참 뒤에 솔직하게 말했고, 기델로의 진지한 표정은 당황스러움과 혼란으로 바뀌었다. 샌슨은 그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모험가는 둘을 다시 소리쳐 불렀고, 두 사람은 그 소리에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지만 아래의 동굴로 내려가기는 조금 꺼려했다. "그래서, 이제 어쩌지?"로 시작하는 대화를 모그리들 앞에서 하는 것은 꽤 부적절했기에, 그들은 근처에 위치한 에테라이트 앞에 모였다.
"바르 레스 광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도해 볼 수도 있어," 모험가가 말했다, "비도프니르는 아마 거기에 있을 거야."
모험가는 모두의 머릿속에 있는 질문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정말 그럴 가치가 있나?
샌슨의 의견은 노래의 대가가 친구가 배가 찢어진 채 덤불 속에서 반쯤 죽은 채로 발견하는 것이라면 '아니, 절대 아니다'였다. 하지만 기델로가 그리다니아를 떠난 이후로 기쁨과 흥분으로 붕붕 뜨며 이 여행을 너무나 원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샌슨은 기델로가 입을 열자 꽤 놀랐다.
"내가 이런 말 하기 좀 부끄럽긴 한데," 기델로가 제 소매를 초조하게 만지작거리고 눈을 피하며 운을 떼었다, "이제 그 불길한 모그리 마법의 영향을 안 받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나 집에 돌아가도 괜찮아, 너희 두 사람이 그걸 원한다면. 인정하자면 이건... 내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기도 해. 그 장송가를 찾고 싶긴 하지만, 우리 누구의 목숨을 걸 만큼의 가치는 없어."
"확실해?" 샌슨이 물었고, 기델로는 혼란스럽다는 듯 찌푸린 눈썹을 한 채 마침내 샌슨을 바라보았다. 샌슨은 허둥지둥 덧붙였다. "그냥, 네가 이걸 엄청 찾고 싶어했던걸 알아서."
기델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난 우리가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섰는지도 잘 모르겠어. 일단 이 '영원의 장송가'라는 걸로부터 한 발짝 멀어져서 더 나은 계획을 떠올릴 수 있을 때까지 잠시 쉬는게 좋을 것 같거든. 삼탑으로 내려가서 드라바니아인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잖아. 음, 링크펄 사용법을 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우리 친구가 돌아오면 연락해 달라고 할 수도 있고, 그때쯤이면 우리가 이 노래에 그렇게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까."
아무도 그들에게는 삼탑을 헤매며 용들을 찾아다닐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고, 기델로 본인조차도 제 제안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는걸 아는 것 같았다.
"산을 내려가는 동안은 시간 여유가 꽤 있을거야," 샌슨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 아래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어떤 생각이 날 지도 몰라."
"잠시만," 모험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누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데,"
모험가의 말이 맞았다. 빛의 전사의 시선을 따라가자, 샌슨은 커다란 용이 그들을 향해 직진하기 전 하늘 위에서 느릿하게 도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후 그 용은 세 사람 앞에 묵직하게 내려앉았고, 샌슨은 즉시 그 용이 모험가가 말했던 비도프니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작은이여, 내가 너희들을 순간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드라바니아인이 말했고, 샌슨은 머릿속에서 공명하는 목소리에 긴장해 살짝 뒤로 물러났다.
"비도프니르," 모험가가 놀랐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어요."
비도프니르가 놀라움에 콧김을 내뿜었다. 나도 똑같이 말할 수 있겠군. 손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일을 더 빨리 끝내고 왔을지도 모른다. 삼탑을 올라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모험가는 손을 내저었다. "올라오는건 별 문제가 없었어요. 내 친구들도 저 만큼 강한 이들이거든요," 그가 샌슨과 기델로를 손짓하며 말했다. 샌슨은 모험가의 목소리에 아래에 깔린 자랑스러움에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위용을 내뿜고 있는 용 앞에서 들뜬 신입처럼 헤실거리며 웃을 수는 없었다.
"쌍사당의 샌슨 스미스입니다." 샌슨이 그가 도시 국가의 총사령부 이름을 알지 궁금해하며 자기소개했다.
"마찬가지로 쌍사당이나.. 뭐 그쪽의 기델로 틸도네." 기델로가 말했다. "뭐 그런 호칭보다 먼저, 음유시인이야."
비도프니르가 두 사람을 평가하는 듯 돌아보았고, 시선은 샌슨의 등 뒤에 걸린 창에서 잠시 머물렀다. 샌슨은 이렇게 용 앞에 선 적이 없었다. 이런 경험을 또 하게 될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창술사는 비도프니르의 강렬한 시선에 움츠러들지 않으려고 애썼고, 한참 후에 용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관심을 기델로에게로 향했다. 잠시 후 용은 만족한 듯 보였고, 모험가에게 고개를 다시 돌리기 전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그가 모험가에게 답했고 셋 모두를 돌아보았다. 어째서 이 구름 위까지 발걸음했나?
모험가는 그들의 요청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모험가가 설명을 끝낼 때 까지 침묵을 유지하다 부드럽게 웃었다.
너희들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 출발을 조금 미뤘다면 좋았으련만. 그가 유감스럽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의 시간과 위험을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지도 좀 보여주겠나?
모험가는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펴 보여주었다. 비도프니르는 잠시 바라보더니 또 다시 픽하고 웃었다. 내가 이걸 또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가 말했다.
"알아보시겠습니까?" 샌슨이 깜짝 놀라 물었다. 샌슨은 제 가슴 속에서 조용히 끓어오르기 시작해 거품처럼 올라오는 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용은 창술사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고, 샌슨은 이번에는 그의 표정에서 주시하는 듯한 표정을 발견하지 않아 안심하며 용을 마주 보았다.
그래, 오늘 이전에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한때 내게 해준 이야기를 들어볼테냐?
모험가는 "물론이죠," 기델로는 "아 드디어" 하는 탄식을 뱉었고, 샌슨은 동료들의 간절하고 반사적인 대답에 동의하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비도프니르는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고쳐앉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시전쟁 이전, 드라바니아인과 용들 사이에서 평화가 흐르던 시절, 세 명의 음유시인이 있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신비로운 곳에서 은거하던 세 사람의 집을 발견했고, 세 명의 인간들이 작은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놀랐다고 하더군. 내 선조 중 한명인 브라기는 음유시인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우정은 즐거운 음악으로 가득 찼었다고 하네.
어느 날, 음유시인 중 한 명이 병으로 스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하네. 남은 두 사람의 찢어진 마음은 절대 고쳐지지 못했고, 브라기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쓰러진 동료의 몸을 먹어치웠다네. 나머지 음유시인들은 이에 분노해 브라기를 쫓아내고는 다시는 그들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명령했네.
수 년이 지났네. 음유시인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은거하며 지냈고, 인간들의 수명이 다 끝나갈 무렵 브라기는 그의 친우들에게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느꼈다네. 하지만 그가 그들의 집에 다시 찾아갔을 때, 음유시인들은 이미 모두 죽어있었다네.
혼자 남은 브라기는 자신의 남은 생명력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숨기기 위해 사용했네. 브라기는 스스로의 존재를 그만두었지만, 그의 영혼은 용이 가장 사랑하던 친구들과,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음악을 보호하게 위해 영원히 그곳에 남아있겠다 맹세했다고 하더군.
어느 순간부터 샌슨은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한숨을 몰아서 쉬었고 기델로의 손가락이 그의 팔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샌슨은 이야기에 푹 빠져있느라 그가 언제부터 제 팔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샌슨이 말했다. 비도프니르는 그를 온화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일종의 인정 같은 것일까?
나도 영광이네, 용이 답했다. 그 곳이 아직 남아있는지, 혹은 어디있는지는 나조차 모르지만 말이다.
"그건 맞아," 기델로가 말했다. "이제 여기서부터 또 한참을 헤메야 진척이 좀 생기겠네."
비도프니르가 다시 웃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네. 자네가 가진 지도는 몇 세기 전의 물건이지만, 용시전쟁 때 만큼 오래되진 않았네. 나는 이 이야기를 인간에게 예전에 한번 한 적이 있지. 이제는 청소부들만이 살고 있는 땅에서 사는 학자였네.
"고마워요," 모험가가 드물게 웃으며 말했다.
비도프니르는 그들을 한번씩 쭉 돌아보더니, 다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아오며 자세를 폈다. 샌슨은 용이 긴 세월을 보내며 벼려왔을 날카로운 정신을 생각하며, 그를 절대 적대 할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랬다. 빛의 전사여, 나는 너와 너의 동료들을 믿기 때문에 이 얘기를 하였네. 내 신뢰를 배반하지 말게나. 그럼 다음에 만날 일이 있기를 기대하지. 용은 그렇게 말하고는 날개를 펴 날아가버렸다. 한 쌍의 거대한 날개는 세 사람의 주변 공기를 길게 밀어내며 샌슨의 헐렁하게 묶여 있던 머리를 손쓸 수 없는 까치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샌슨은 그래도 신경쓰지 않았다. 방금 전의 이야기는 그들이 얻은 가장 자세한 안내였고, 창술사는 모험의 짜릿함이 그를 다시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도프니르가 알 거라는거 어떻게 알았어?" 기델로가 모험가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험가는 그냥 웃었다.
"몰랐지. 그렇지만 비도프니르가 흐레스벨그의 가장 오래된 자식이고, 용들을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 그러고 싶지 않을테지만 -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저 사람이 최고니까 알기를 바랬던 거지." 그가 설명했다. "조금 더 인간들에게 개방적인 용이기도 하고."
"그럼 이제 갈까요?" 샌슨이 말했다. 샌슨은 당장이라도 이 바람과 추위에서 벗어나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모험가가 눈살을 찌푸리며 귀에 손을 가져다대며, 잠시 이야기 좀 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샌슨은 모험가가 받는 대부분의 링크펄이 새벽의 혈맹이 모험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내용임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이 도시 국가나 세상을 구하기 위한 도움의 요청이었고, 샌슨은 아직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눈 앞에 있는 새로운 모험에 대한 흥분의 불길이 흐지부지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샌슨은 근처 벽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제 주머니에서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을 느끼고는 팔을 풀었다.
"너한테 줄게 있어," 샌슨이 거두절미하고 주머니에서 기델로의 일기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샌슨은 자신이 일기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고, 기델로가 깨어나자마자 돌려줬어야 함을 알지만, 친구의 긴박한 상태와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그 생각을 밀어낸 지 오래였다.
"내 일기장이네," 기델로가 놀라며 말했다. "어제 폭죽을 찾아다닐 때 보니 없더라고. 그래서 잃어버린 줄 알았어."
"둥지에 널 찾으러 갔을 때 발견했었어," 샌슨이 설명했다. "여기" 샌슨은 일기장을 내밀었고, 기델로의 표정이 무어라 심각하게 바뀌었다. "어- 이거 읽었어. 미안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거 아는데, 이게 우리가 널 찾으러 다닐 때 쓸 수 있는 유일한 힌트였어."
기델로가 샌슨의 손에서 일기장을 살짝 잡아당겨 빼냈다. 음유시인은 손의 일기장을 이래저래 뒤집어 보고서는 엉망이 된 흔적들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그가 말했다. "여기 쓸만한 내용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냥 바보가 중얼거린 말들 뿐이잖아."
"그럴지도," 샌슨이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장갑에게 엄청 화가 나 있었는데."
"아 맞아, 뒤통수가 아프긴 했지," 기델로가 중얼거렸다. 그는 제 맨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때 내 손을 화살깃으로부터 보호해줬는데, 그 다음에는 날 파멸로 밀어넣었어."
"그리고 어 - 네가 쓴 것 같긴 했는데 -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고 했잖아," 샌슨이 불안감이 가슴을 채우는걸 느끼며 계속 말했다. 샌슨은 스스로가 지금 꽤 무례하다게 들릴 거라고 확신했다.
"그랬었지," 기델로가 순순히 인정했다.
"뭐였어?" 샌슨이 말했다.
기델로의 입술이 작게 말려올라갔다. "비밀이야."
"알겠어." 그는 바로 대답이 돌아오리라 기대한 자신이 바보임을 깨달았다. 기델로는 늘 얼핏 보면 입이 가벼워 보였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늘 숨기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샌슨은 실망한 기색을 숨길 수는 없었다.
"아, 나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고. 하나만 얘기할게," 기델로가 일기장을 샌슨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거 지금부터 네가 갖고 있어. 집에 도착하면 그때 돌려줘. 그럼 그때 얘기 해 줄게."
샌슨이 일기장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 방금 그 말 기억하고 있을거야," 그가 위협했고, 기델로의 입술은 경쾌한 미소로 올라갔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 기델로가 말했고, 샌슨이 그 말의 의미에 제대로 반문하기도 전에 빛의 모험가가 음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야?" 기델로가 물었다.
"돌의 집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 모험가가 말했다. "상황이 안 좋아."
샌슨은 얼굴을 찡그렸다. 일개 쌍사당 장교가 모험가와 새벽의 현자들이 알라미고 해방 이후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지만, 모험가가 이전에 두 사람에게 전해준 소식들 중에서는 긍정적인 내용이 그다지 없었다. 샌슨은 제 직감이 맞았다는데 놀라지는 않으면서도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나 빼고 둘이서 가," 모험가가 말했고, 샌슨과 기델로는 둘 다 엑 하는 소리를 냈다.
"너 없이 우리 둘이서 어떻게 해," 기델로가 반박했다. "거긴 적어도 일천년을 묵은 곳일 거니까, 잠깐 내버려 두는건 괜찮을거야."
"내가 돌아오려면 꽤 걸릴 지도 몰라," 모험가가 받아쳤고, 샌슨이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떨림이 목소리에서 비어져 나왔다. "너희 둘이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우리 전부 무사히 집에 돌아왔을 때 모험담을 듣고 싶어." 그 말에 걸고 넘어질 지점은 없었다. 세 사람은 모험가의 초코보가 제 주인이 아닌 다른 이의 말을 완강하게 듣지 않자, 다음 한 시간 정도를 걸어가야 할 두 사람의 짐이 과하지 않게 가방을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며 보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샌슨이 그들이 헤어질 준비를 마치자 다급하게 말했다. 기델로는 친구를 두고 간다는 발상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말을 했다.
"너희들도," 모험가가 그 말을 되돌려 주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나 쟤가 돈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해졌어," 기델로가 조용히 말했다. 샌슨은 그가 가라앉은 침묵을 어떻게든 채우려 꺼낸 말임을 알았지만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원할 때마다 에테라이트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봐. 난 그럼 절대 안 걸을 거야."
"그랬다간 애완돼지보다도 더 통통해질걸," 샌슨이 기델로에게서 픽 웃는 소리를 끌어내며 말했다. 둘은 단 한 번도 의지할만한 친구 없이 큰 미지를 향해 여행 해 본 적이 없었다. "일단 이 산을 내려간 다음 뭘 할지 계획해 보는 건 어때?"
솜 알 산을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쉬웠고, 그들은 운 좋게도 마을 근처까지 내려가면서 몇 마리의 독수리를 제외하고는 위험한 생물조차 만나지 않았다. 그들은 삼탑의 건물을 둘러싼 초원에 야영지를 세웠고 - 그들의 장비를 챙겨다니며 텐트를 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하나 뿐이었지만 - 저녁을 저지 드라바니아 지도와 장송가 지도를 두고 겹쳐보며 보냈다. 모험가는 시간을 들여 지도에 길과 다리들을 연결해 표시해 두었고(강의 넓은 부분을 동그라미 치고 한가운데에 알렉산더라고 커다랗게 써놓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어디로 길을 가건 빙 둘러가는 교차로를 지나야 했기에, 그들의 발은 어디로 가건 젖을 운명인 것 같았다.
"생각해 봤는데," 샌슨이 지도같은 시의 한 줄을 짚으며 말했다. "여기 이렇게 써있잖아 : '살리아크의 은총으로 길게 갈라지는 땅에'라고... 그럼 이게 강 근처에 있다는 걸까?" 저자 드라바니아 전체를 의미하는 시구일 수도 있겠지만, 샌슨은 '땅'의 끝에 복수형 표현이 붙어있지 않은 것이 계속해서 신경쓰였다. "그리고 비도프니르가 전에 이야기를 해줬다는 사람 말인데, 우리 둘 다 그 사람이 샬레이안 학자였을 거라는데에 동의할 것 같거든. 다른 학자들이 무언가 도서관에 기록을 남겨둔 건 없을까?" 그는 모험가가 구브라라고 써둔 부분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그럴지도," 기델로가 동의했다. "시도 해 볼만할거야, 고블린들이 길을 헤매는 우릴 날려버리려 들기 전에 길을 찾아두는 게 낫겠지."
"뭐라도 아는 사람들이 있는지 이딜샤이어에 먼저 들러서 한번 알아보자," 샌슨이 제안했다. 그는 시간이 허용된다면 도시를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한번은 지나가게 될 것 같으니까."
"네가 이렇게 신나하는거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기델로가 샌슨의 생각의 흐름을 끊으며 말했다. "네가 늘 진지한거 되게 짜증내곤 했는데, 지금은 마음에 들어."
"뭐?" 샌슨은 조도 낮은 램프가 갑작스런 칭찬에 붉어진 얼굴을 가려주는데에 감사하며 반사적으로 답했다.
기델로는 샌슨이 말을 잘못 이해했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기울였다. "너 화나게 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
"나 화 안 났어." 기델로가 그의 머리를 좌절감에 뽑고 싶어하게 만드는 것들은 매우 많았지만, 샌슨은 둘의 험난했던 첫 시작을 떠올리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난 네가 이걸 나만큼이나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좀 기뻐," 기델로가 말했고, 아니 중얼거렸고, 샌슨은 갑자기 그들의 텐트가 얼마나 작은지, 그들이 짐에 둘러 싸여 앉은 이 공간이 얼마나 좁은지, 기델로의 씩 웃는 웃음이 낮은 램프 불빛 아래에서 얼마나 진지하고 솔직한지 깨달았다.
"이건 진지하게 얘기했어야 하는건데," 샌슨은 기델로가 제발 자신을 이렇게 쳐다보지 않길 바라며 운을 떼었다; 저 표정 때문에 그는 제대로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우린 만약 장송가을 찾으면 어떻게 할지 얘기 좀 해보자."
기델로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아. 그래, 그랬었지."
"그게 만약 진짜 노래라면, 그리고 혹시나 정말로 사람을 불멸로 만들어 준다면, 혹여 우리가 그 노래를 찾아낸다면, 내가 봤을땐 장송가를 없애야 할 것 같아," 샌슨은 자신이 지금 제 친구를 실망시키고 있음을 알고 그게 더 쉬운 일이길 바랬다. "비도프니르가 자기의 신뢰를 배반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마 그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일거고, 내 양심을 저버려 가면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
"있지, 나도 동의해." 기델로가 조심스레 말하자 샌슨은 깜짝 놀랐다. "사실 그리다니아를 떠난 후로 쭉 생각해봤어. 불멸은 아마 꽤 멋지긴 하겠지만, 음 만약에, 바리스 황제 같은 사람들이 그걸 가진다면 전혀 멋지지 않을 것 같거든." 그는 제가 뱉은 말의 반감에 부르르 떨었다. "상상해 봐,"
샌슨은 그 상황을 가정해 보았고, 그게 정확히 그가가 그런 장송가가 실제로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 그가 말했다. "나랑 같은 생각이면, 왜 그렇게 노래를 찾고 싶어했어?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기델로가 애매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모험이 부르고, 발견에는 기쁨이 있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너랑 시간을 보내는게 좋을 수도 있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너도 여기서 나만큼이나 열심히 노래를 찾고 있잖아. 그걸 보면 왠지 너도 내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자, 샌슨은 실제로 본인이 답을 알고 있음을 깨닫고, 그게 얼마나 단순한 답이었는지 알아차리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샌슨은 하루종일 제 사무실에 잡혀있는데 지쳤었고, 쌍사당에 속하는데에 큰 관심이 없는 지원자들을 위해 훈련 체계나 짜고 있는 것에 이골이 나 있었다. 쌍사당에 투신하는게 그저 옳은 일인 줄 알고 지원한 사람들이 싫었었다. 지원자들은 알라미고의 탈환에 대한 소식이 퍼진 후 에오르제아 전체가 느꼈을 고양감에 무작정 합류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해방의 기쁨이 사라지자 그 사람들은 연기처럼 흩어져 사임하지 않았던가.
창술사는 허름한 정착촌의 차가운 반석 위 비좁은 텐트에서, 램프의 기름이 다 떨어지고 눈이 졸음에 감길 때까지 지도와 문서들을 보며 기델로와 함께 있고 싶었다. 여행을 하며 느낀 영감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무언가 새롭거나 오래된 것들을 보고 발견하고 싶었고, 혹은 기델로의 노래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놀라움과 경외를 자신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샌슨은 그가 당장 가진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했고, 그 이상을 원하는 자신이 이기적임을 알았고, 원한다는 사실조차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그 갈망은 마치 굶주림처럼 피할 수 없이 아프게 그를 갉아먹었다.
기델로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 또한 샌슨의 머릿속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샌슨은 저지 드라바니아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이 지역의 역사와 학문적인 지식 정도는 가지고 있었고, 요즘은 고블린들이 이곳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지식은 상상력을 보충해 주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게 분명했다.
그는 살리아크 강 위를 차지하고 있는 알렉산더를 직접 볼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델로는 눈앞의 풍경에 멈춰 서 휘파람을 불더니, 그의 일기장을 꺼내(기델로가 항상 적어도 두 권의 일기장을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은 샌슨에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두 사람이 다시 출발하기 전 몇 분을 글을 쓰며 보냈다. 샬레이안 식민지 유적은 화려했고, 샌슨은 그곳들을 며칠을 들여서 탐사해 보고 싶었지만, 그보다 휴식과 따뜻한 식사가 간절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이딜샤이어에 도착하길 바랬다. 그는 목욕과 침대가 간절했기에 이딜샤이어의 작고 사랑스러운 여관과 실내 시설에 대한 모험가의 말을 머리에 새기며 계속 걸었다.
모험가는 일전에 일루미나티(푸른손)에 대해서도 경고했지만, 의외로 두 사람이 마주한 고블린들과는 별 문제가 없었다. 샌슨은 푸른손들이 알렉산더의 통제권을 잃은 후, 목적과 리더를 잃자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했다. 하루 종일 긴 걸음 끝에 그들은 무사히 이딜샤이어에 도착했고, 샌슨과 기델로는 거의 뛰다시피 에테라이트를 향해 다가갔다.
교감이 끝나자 그들은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친절해 보이는 고블린은 "슈우우욱, 고블린 연구소 뒤에 있다."라는 대답을 주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몇 개의 건물을 지나자 밤을 보낼 수 있는 방을 찾아냈다.
"침대다," 기델로는 긴말 하지 않고 문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를 향해 얼굴을 묻으며 신나게 말했다.
"난 네가 침대보다 구름솜풀을 더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샌슨이 말하자 기델로는 그의 짐을 침대 옆에 내려놓으며 쏘아보았다.
"부랑자한테는 선택지가 없잖아," 기델로가 샌슨의 말에 중얼거렸지만, 대답은 침대 매트리스에 눌려 한껏 뭉개져 들렸다.
샌슨은 침대보다 샤워 시설이 더 간절한 상태였다. 카스트룸 벨로디나 이후로 제대로 씻을 기회가 없었고, 샌슨은 당장이라도 뒤집어 쓰고 있는 먼지를 모두 털어낼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딜샤이어가 24시간 운영되는데에 감사했다. 샌슨은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더는 견딜 자신이 없었다.
기델로를 침대 옆에 내버려 두고, 샌슨은 당장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 보다 제 몸의 먼지를 씻어내는데 집중했다. 기델로는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옆에 와 있었다. 둘은 서로의 몸에 더는 먼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확신할 때 까지 잠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샌슨은 코를 골며 깊이 잠들었고, 그리다니아를 떠나 모험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말끔한 기분을 느끼며 이른 새벽에 깨어났다. 샌슨은 기델로가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음유시인이 깨어나기 전까지 조용히 짐을 챙겼다. 만약 두 사람이 아침 나절을 도서관에 대해 수소문해보고 다닌다면, 이론상으로는 해질녘 즈음에는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샌슨은 이딜샤이어에 몇백년 전에 죽은 이름없는 학자가 쓴 글이 어디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할런지 잠시 궁금했다.
기델로가 일어나 움직일 준비가 되자, 둘은 더 넓은 지역을 다니기 위해 흩어져 길을 묻기 시작했다. 샌슨이 서쪽으로 가는 동안 기델로는 남쪽을 맡았고, 9시 반이 되기 전에 달팽이 광장이라는 정원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샌슨이 맡은 길에는 풍성한 식물들이 자리한 정원들이 자리해 있었다. 정원의 원예가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한다는 반응이었기에, 그들의 일터에 더 들어가지 않고 빠져나왔다. 식당의 직원들과 행인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권위적인 아우라를 휘감은 한밤의 이슬이라는 여성을 마침내 만났을 때 샌슨은 그가 마지막 희망임을 알아챘다. 한밤의 이슬은 샌슨의 설명을 엉덩이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들었고, 긴 설명이 끝나자 물었다. “넌 우리 모험가 친구는 어떻게 만난거야?”
그래서 샌슨은 영원의 장송가라 추측될 수 있는 부분만을 생략한 채 조심스레 그들이 여행해 온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한밤의 이슬의 표정은 점점 풀어지다 샌슨의 이야기가 불꽃축제 때 모험가가 만취해 부른 축제곡이 너무 커서 반경 삼십말름 이내의 사람들이 모험가가 비명을 지른 줄 알았다는 부분까지 도달하자 그의 옆에서 배를 부여잡고 웃어댔다.
“아, 정말 네가 걔 친구긴 하구나,” 한밤의 이슬은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너희가 여기까지 왔는데 걔는 돌아가야 했다는건 아쉽네, 그 녀석을 또 볼 날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루가딘은 샌슨에게 빛의 전사와 있었던 광활한 모험담을 이야기 해 주었고, 샌슨은 모험가가 제 여유시간에 한밤의 이슬이 말한 "고블린들 한 무더기를 쌓아놓았다"를 포함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었다는 점에 놀라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네가 약속시간에 늦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기델로가 샌슨의 옆에 스르르 나타나며 말했다. 샌슨은 욕지기를 뱉으며 주머니 안의 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시계는 약속한 시간보다 15분은 족히 늦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네가 진짜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긴 하네.”
샌슨은 기델로가 한밤의 이슬을 훑어보며 긴장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상대는 개구진 웃음을 지으며 기델로를 여유롭게 바라보았다.
“너 지금 완전히 번지수 잘못 짚었어,” 그가 느릿하게 말했고, 기델로가 모욕당했다는 표정을 짓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게 아니라- 난 - “
샌슨의 눈 앞에 그가 절대 못 볼 것 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그 기델로 틸도네의 예쁘장한 얼굴에 말문이 막힌 상태라니.
한밤의 이슬은 눈가에 눈물을 닦으며 기델로에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네가 샌슨이 말해준 다른 친구겠구나,” 그가 샌슨을 가리키며 말했다.
샌슨이 두 사람을 제대로 소개시켜 준 후, 한밤의 이슬이 말했다. “너희가 찾고 있다는게 정말 사실이라면 - 나도 맞다에 걸긴 할텐데 - 구브라 환상도서관에 가는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 용시전쟁이 끝난 이후로 거기는 쭉 개방되어 있어. 약탈자들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별 문제 없을거야. 그리고 너희가 찾던 학자에 관해서는, 안타깝지만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도 그 학자가 용들에 대해 연구하던 사람이라면 역사관 어딘가에는 있을거야.”
“감사합니다,” 샌슨은 한밤의 이슬이 설명해준 것들을 머릿속에 새기며 감사 인사를 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만, 해가 지기 전에 도서관에 도착하려면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한밤의 이슬의 눈썹이 휙 올라갔다. “밤? 설마 걸어서 여행 중인건 아니지?” 그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는 안되지. 나랑 다리까지 같이 가자; 초코보 한두마리 정도는 빌려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샌슨은 그의 예상치 못한 친절에 감동하며 말했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보답할 방법이라도 있다면-“
루가딘은 그저 손을 내저었다. “그냥 잘 다녀와서 초코보만 돌려줘.”
둘의 여행은 초코보를 타자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밤의 이슬은 두 사람을 위해 루가딘들이 타고 다니는 초코보를 빌려주었고, 아직 비행 훈련은 되어있지 않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샌슨은 초코보의 큰 크기를 제외하고도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험가와 초코보 위에서 기델로를 찾아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때를 떠올렸다. 물론 이전의 상황에 다시 처한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날아서 이동하는건 꽤 위험한 일이었다. 샌슨은 만약 초코보의 등 뒤에서 미끄러졌었다면 어떻게 됬을지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샌슨은 기델로 뒤에 기대어 다른 사람이 무너진 거리와 버려진 유적을 초코보를 타고 달리는 동안 일기장을 꺼내어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서 남겼다. 흔들리는 손으로 쓴 것 중에 하나는( 초코보 위에서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집에 도착하면 개인 초코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쌍사당에 요청해야겠다 메모를 남겨두는 것이었다. 적어도 물집 잡힌 그의 발은 이 깨달음에 깊이 감사할 것이다.
초코보는 힘차게 달렸고 엄청나게 빨라서, 샌슨이 구브라 환상도서관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건물 앞에 내려서 회중시계의 시간을 확인했을 때는 오후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건물이 벼랑에 걸려있는 것 같아,” 샌슨이 건축물에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걸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 기델로가 놀라워하며 초코보에서 내렸다.
그들은 초코보를 메어놓지는 않았다. 한밤의 이슬은 일전에 초코보들이 쌍사당의 초코보들과 마찬가지로, 호루라기를 다시 불기 전까지 포식자들을 피해 편히 있을 곳을 알아서 찾아내 쉬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초코보를 풀어주기 위해 밀어내던 샌슨은 초코보의 커다란 발톱 크기를 보고는 아마 별 문제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도서관 내부는 어둡고, 곰팡내 나고 먼지로 덮여 있었다. 샌슨은 이곳에 마물이 득실거릴거라 예상했지만, 복도를 방해 없이 무사히 통과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둘의 목적지는 자연사 구역이었고, 한밤의 이슬이 둥근 홀이 시작되는 도서관의 안쪽 근처에 있을 거라 확신한 곳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걷다 둥근 복도를 발견하고 너무 멀리까지 왔음을 깨닫고는 바로 앞의 사각형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놓여진 한 고서에는 '한 소년과 용의 동성애'라고 씌여 있었고, 샌슨은 그들이 제대로 된 구역에 왔을 거라고 직감해 기델로에게 이곳을 둘러보자 제안했다. 다음 몇 시간은 목표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명난 책들을 밀어내고 분류하는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어떠한 수확도 없이 작업이 계속되자 샌슨은 오늘 안에 이 일을 끝낼 수 있을지 의심할 때 즈음, 방 건너편에서 들려온 환호성이 샌슨의 주의를 끌었다.
"찾았다! 들어봐 : '나는 그 용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드라바니아인을 만나러 갔다. 그의 종족은 인간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은 나의 목숨보다 내가 가진 지식을 향해 더 끌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와 서로의 역사를 공유했고, 가장 흥미로는 현상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글은 브라기라는 이름을 언급하기 전 이렇게 씌여 있었다."
샌슨은 숨을 고르고 기델로가 책을 다시 읽기 전 얼른 방을 가로질러 다가갔다. 기델로의 손에 들린 책은 일종의 수필 모음집 같았고, R.플라몬돈이라는 이름이 수많은 작가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샌슨은 기델로가 큰 소리로 책을 읽는 동안 눈으로 글자들을 따라갔다. 플라몬돈이 일기 형식으로 쓴 짧은 글에는 숨겨진 지역의 흔적 찾기 위해 에테르 도구나 장비들을 사용해 기이한 현상을 찾아 다녔던 시도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다. 학자는 몇 곳의 가능성 있는 장소들을 추려냈지만 (그 중에 한 곳은 도서관과 너무 가까워 샌슨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아쉽게도 글은 결말을 남기지 않은 채 끝나 있었다. 편집자는 플라몬돈이 연구를 끝내기 전에 사망하였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견습생에게 연구를 전수하지도 않았다고 남겨두었다. 또한, 플라몬돈의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들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족도 붙어 있었다. 글의 어디에도 영원의 장송가에 관한 이야기나 언급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모호한 글은 에세이와 책들 사이에 묻힌 채, 도서관이 봉쇄되면서 의도적으로 숨겨진 것 같았다.
기델로는 책을 끝까지 읽자 수필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들이 맞는 길에 서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늦은 오후의 햇볕에 눈을 깜빡이게 될 때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 도서관을 나왔다.
둘은 플라몬돈이 언급한 곳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몇몇 지점들을 먼저 조사해 보기로 했다. 첫번째 위치는 위험한 경사로 서 있는 절벽 아래였고, 그곳으로 다가가는 과정은 느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문득 빌려왔던 초코보를 걱정했다. 샌슨은 만약 그들이 초코보의 발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이딜샤이어로 데리고 가야 한다면 한밤의 이슬을 도저히 볼 낯이 없었다. 그들은 초코보를 이끌고 험준한 길을 계속해서 가로질러 걸었다. 지치고 답답할 정도로 기나긴 몇 시간이 지난 후, 알렉산더의 웅장한 규모를 전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고원 위에 도착했다. 샌슨은 뒷목의 털이 쭈뼛 서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을 따라온 초코보는 불안하게 움찔거렸다. 어쩌면 알렉산더가 휴면 상태의 야만신이라서 수도 있고, 두 사람이 드디어 제대로 된 곳에 서 있다는 기쁨 때문일 수도 있고, 공기 중의 에테르 에너지가 흔들리느라 그럴 수도 있었다.
"여기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아," 기델로가 중얼거리며 샌슨을 이상한 상념에서 깨웠다. 기델로는 깎아지르는 바위 면을 가만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샌슨만큼 이상한 우수에 잠기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그런 감정을 더 잘 숨기는 것일 수도 있다. "느껴져. 너도 눈치챘지? 우리 거의 다 온 것 같아, 여기 - "
샌슨은 눈을 깜빡였다. 기델로는 절벽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미끄러져 사라졌다. 샌슨은 이번에는 진짜로 제 친구를 잃었다는 저항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이번에는 구할 방법도, 낫게 할 방법도 없다. 기델로가 사라졌다.
샌슨은 초코보의 놀란 울음 소리는 신경쓰지도 않고 친구가 사라진 바위의 깎아지르는 면을 향해 말없이 비명을 질렀다. 겁에 질려 주먹을 들어 돌을 향해 내리쳤지만, 장갑 낀 손은 어째서인지 바위가 쭉 늘어나자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샌슨의 나머지 몸도 반동으로 그대로 쭉 미끄러졌고, 잠시 후 샌슨은 무릎과 손을 땅에 짚은채 넘어져 있었다.
"끝내주는 환영이다 그지?" 기델로가 말했다. "나도 요란하게 넘어졌으니까 딱히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샌슨은 그가 다른 이유로 당황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어라 덧붙이지 않고 몸을 일으켜 먼지를 털었다. "여기일까?" 그가 제 친구와 눈앞에 놓인 풍경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의 눈 앞에는 두 개의 높은 산 사이에 자리잡은 비포장 도로 하나 뿐이었다.
"알 방법은 하나뿐이지," 기델로가 말했다. "그전에 뒤 한번 돌아봐."
샌슨은 뒤를 돌아봤고,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알렉산더가 서 있던 곳은 연기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는 기델로가 자신보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기분이 상했다.
둘은 나란히 가문비나무 숲이 티크 나무가 늘어선 좁은 통로로 바뀔 때까지 길을 따라 걸었다. 샌슨은 어느 순간 두 사람이 완전한 정적 속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산들바람도,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그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정지된 시간 안에 묶여 있는 것 같았다.
나무들의 수가 또 한번 줄어들고, 샌슨은 눈앞에 펼쳐진 평지를 바라보았다.
"놀라워," 그가 내쉬었다. "만약 비도프니르가 사실이라면, 이곳은 천여년간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곳으로 남아있었을 거야."
개간지에 홀로 서 있는 오두막을 샌슨은 겨우 알아보았다. 나무들 사이를 지날때, 몇 개의 길은 계속 해서 갈라졌고, 각각의 길은 모두 흰 장미 수풀이 늘어서 있었다. 꽃들은 자신들은 감싼 잎사귀를 중심으로 피어올랐고, 나무 가지를 휘감고 태평스레 자란 넝쿨은 샌슨의 목을 막히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미묘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샌슨은 이들이 모두 이 긴 세월 동안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랐다.
"여길 엄청 섬세하게 꾸며놨네. 우리 입장에서는 보존되고 있어서 다행이야," 기델로가 말했다.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가벼운 유머였다.
나란히 오두막을 향해 다가가면 갈수록 샌슨은 지금이라도 등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불안한 감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샌슨은 기델로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작정이었고, 장송가가 불온한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발견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오두막 앞 정원에는 꽃들이 늘어서 있었다; 샌슨은 몇 종의 꽃들이 검은장막 숲이 원산임을 알았지만, 피어있는 나머지 꽃들은 그의 기준으로도 오리무중이었다. 작은 건물의 옆에는 더 큰 정원이 만개해 있었는데, 에오르제아 전역의 꽃들이 전부 피어있었다. 샌슨은 어떻게 에메랄드 콩이 이렇게 낮은 고도에서 자라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고, 앞으로도 알 수 없으리라 의심했다.
오두막 안은 바깥과 마찬가지로 고요했다. 샌슨과 기델로는 조심스레 앞쪽 방을 수색했고, 부엌과 식당을 같이 돌아보고, 쓸데없이 손 대지 않고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두려고 조심스레 움직였다. 장송가을 제외하면, 만약 그게 존재하긴 한다면, 샌슨은 이곳의 모든 것들을 그들이 도착하기 전과 다를 게 없도록 그대로 남겨두고 싶었다.
부엌부터 식당까지 수확이 없자, 그들은 구석진 방으로 들어갔고, 작은 침실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샌슨은 겁에 질렸다.
이곳의 주민은 살아 있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겠지, 샌슨은 속으로 중얼거렸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는 마치 어젯 밤 잠들었다 다시 깨어난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
"샌슨," 기델로가 혹여 그 남자를 깨울까 두렵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그는 문가에서 얼어붙어 있었다. "나 이거 영 마음에 안들어. 여기에 얼마나 오래 이 상태로 있었을까?"
"모르겠어," 샌슨이 똑같이 조용히 답했다. "비도프니르는 이곳이 용시전쟁 이후로 인간의 눈에 띈 적은 없다고 했어, 하지만..."
"천 년이나?" 기델로가 놀라며 물었다. "이곳에 걸린 시간 정지 마법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유지되고 있는거야?"
샌슨이 피식 웃었다. "용이잖아," 샌슨은 마치 그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 마냥 중얼거렸다. 창술사는 막연히 눈 앞에 누워 있는 남자가 비도프니르가 언급한 음유시인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그 사실을 그를 코앞에 두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사람 앞에서 물건을 찾아다니는게 맞는 일일까?" 기델로가 불쾌함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샌슨이 답했다. "이 방은 그냥 그대로 두자."
다른 침실에는 달리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다른 방과 비슷하게 꾸며져 있고, 비슷하게 손을 타지 않은 고요한 모습이었다.
오두막의 마지막 방은 개인 서재처럼 보였다. 책장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하나뿐인 창문 아래에는 작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기델로가 산처럼 꽂힌 책들을 돌아보는 동안, 샌슨은 책상을 조사했다. 책상 위는 깔끔했다. 여기서 관리하던 이가 누구였건, 그들의 물건을 매우 깔끔하게 두는데 열심이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첫번째 서랍을 열어보고는 놀라 감탄을 내뱉었다. 기델로는 일 초도 지나지 않아 그의 옆에 있었다.
서랍장 안에는 몇 장의 악보가 들어 있었다. 기델로는 종이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 '네 개의 엄숙한 노래'?" 그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위에 쓰여진 제목을 읽었다. "좀 단순한데."
"어디 선술집 음유시인들이나 남녀한테 잘 보이려고 길고 요란한 제목을 짓잖아." 샌슨이 말했고 기델로는 눈을 굴렸다. "악보에 작곡가 이름은 없어?"
기델로는 악보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헌정사 한 줄 뿐인 것 같네. 여기."
기델로는 종이들을 샌슨에게 내밀었다. 제목과 작품 번호 아래에는 짧게 휘갈겨진 비문 한 줄 뿐이었다.
클라라를 위하여.
"크게 도움은 안 된다, 그치?" 기델로가 말했다. "좀 이상해, 여기 세 곡 밖에 없거든. 마지막 곡은 어디로 갔을 지 모르겠어."
"작곡가가 클라라를 사랑했나봐," 샌슨이 중얼거렸다. "이 시는 정말.. 아름다워, 그래서 너무 슬퍼. 이 사람 죽어가고 있었나봐. 아마..." 그는 다음 페이지의 몇 줄을 더 읽어 내려갔다. "둘 모두 죽어가고 있었나봐."
"나도 보여줘," 기델로의 말에 샌슨은 악보들을 돌려주었다. 기델로의 표정은 의심에서 호기심을 지나 침울함으로 물들었다. "네 말이 맞아," 그는 시를 다 읽자 딱 한 마디만을 덧붙이고는, 케이스에서 그의 리라를 꺼내들었다.
"뭐하려고?" 샌슨은 기델로가 빠르게 제 악기의 음을 맞추는 것을 보고 물었다.
대답이라도 하듯, 기델로는 연주를 시작했다. 샌슨은 금새 그 노래가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중 첫번째 곡임을 알아차렸다. 멜로디는 그가 악보를 읽으며 막연히 상상한 것보다 훨씬,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기델로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기델로는 이름모를 작곡가가 그의 죽어가는 사랑을 위해 쓴 곡을 노래했고, 그의 목소리는 시구 한 줄 한 줄을 통해 흩어지지 않고 슬픔에 잠긴 채 주변을 떠돌았다. 마지막 소절까지 노래한 기델로가 리라를 내려놓았을 때, 샌슨은 기델로의 눈에서 이번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반짝임을 발견하고 놀랐다.
“다른 곡도 연주할거야?” 샌슨이 물었고, 기델로가 제 뺨에 손을 갖다대자 퍼뜩 놀랐다.
“아니,” 기델로가 답했고, 손을 치웠을 때 음유시인의 엄지손가락 끝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샌슨은 제 얼굴에 손을 갖다대고서야 자신이 기델로의 연주에 울기 시작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놀랐다. “미안.”
기델로가 샌슨의 반응 때문에 사과한건지, 아니면 노래를 끝까지 연주 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한건지 샌슨은 알 수 없었지만,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식사는 밖으로 나가서 하기로 결정했다. 길게 말을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샌슨은 기델로가 가능한 한 이 오두막에서 무언가 먹는 것을 피하고 싶어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이곳의 하늘 또한 바뀌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샌슨은 그들이 이 괴상한 영역에 발을 들일 즈음 해가 저물기 시작했음을 확신했지만 그들 눈앞의 하늘은 여전히 창백한 파란색이었고 구름 한 점 없는 아침나절 같았다. 이곳은 너무나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어서 무언가 감히 먹기조차 불편했고(합리화하자면 그렇다. 샌슨은 이곳의 나무와 정원의 무언가로 불을 피워 먹을 생각을 하면 속이 너무 불편했다), 그들의 그림자로 미루어 보면 바로 머리 위에 있어야 할 태양도 찾지 못해 그를 당황스럽게 했다.
샌슨은 이곳을 계속 조사하고 싶었지만, 끝나지 않는 파란 하늘은 시간을 저버린 듯 했다. 두 사람이 이 영역에 들어선 순간 시계가 멈춰섰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쯤이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일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우리 좀 쉬어야 해,” 샌슨이 걱정스레 말했고, 기델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는 궂은 날씨도 걱정해야 할 포식자도 없었기에 텐트를 세우는 것은 무의미했다. 샌슨은 침낭을 오두막 근처되 건물로부터 가능한 먼 개간지에 풀어놓았다.
샌슨은 몇시간쯤 간신히 자다 죽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이 떠오르자 식은땀을 흘리며 발작적으로 깨어났고, 다시 잠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함을 알기에 그냥 일어나기를 택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에는 의미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장송가을 찾아 떠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기델로를 깨울까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자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두 사람이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줄곧 수척하고 창백한 상태였고, 날카로워진 신경까지 감안한다면 친구를 더 쉬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었기에, 샌슨은 기델로를 숲으로 끌고 다니기 전에 혼자 약간의 탐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비도프니르가 말했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샌슨이 네 개의 엄숙한 노래의 첫번째 악장에서 읽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다른 음유시인은 - 죽은 뒤 먹혔다는 이 말고 - 오두막에서 발견된 그 남자 이전에 이곳에서 죽었을 것이다. 클라라는 저 안에 있지 않았고, 만약 그가 화장된 것이 아니라면(샌슨은 그런 풍습이 그 먼 옛날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클라라가 어디있을지는 딱 한 곳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클라라를 찾아내야만 한다.
샌슨은 그가 걸어 온 길이 어디 있었는지, 어디서 길이 교차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머릿속으로 새기며 숲을 걸었다. 검은장막 숲에 비하면 작은 숲의 지도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해 볼 만한 길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샌슨은 제발 그곳이 막다른 길이 아니길 바랬다; 그 길이 아니라면 장송가이 어디 있을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샌슨 스미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기델로의 새된 목소리가 고요를 뚫고 소리쳤다. 샌슨은 어떤 소리가 들릴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펄쩍 뛰며 똑같이 소리 칠 뻔 했고, 발을 돌리자 기델로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한참을 뛰었는지 두 배로 몸을 기울이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클라라를 찾고 있었어,” 샌슨이 설명했다. “작곡가는 그 사람을 위해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쓴 거였잖아. 클라라가 어디 묻혀있는지 알아낸다면, 이 노래 찾는 일의 답이 나올 것 같아서.”
“너 혼자서?” 기델로가 허리를 펴며 쏘아붙였다. “너한테 뭔 일 났으면 어쩔건데? 네가 어디 갔는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더라. 내가 모르는 새에 여길 스르르 빠져나가서 절벽 어딘가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모험가는 여기서 수십 말름 밖 모르도나일지 어딜지 모르는 곳에 있을 거고, 초코보도 밖에 두고 와서 네가 사라지거나 다치면 찾아다닐 수도 없단 말이야!”
샌슨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볼을 벌겋게 물들였다. "네가 날 끊임없이 감독하고 지켜볼 필요 없어, 내가 살짝 미끄러진다고 장미 덤불을 구르지는 않을 건데." 그가 늘어선 길의 식물들 중 하나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누르발 사건 이후로 너 진짜 숨막힌다. 난 네가 매번 손 잡아줘야 하는 어린애가 아니거든!"
기델로가 숨을 흡 들이키고는 샌슨 앞에 다가섰다. "내가 부탁한건 네가 다음에 또 이상하게 시간이 정지된 광야를 설렁설렁 돌아다니고 싶으면 메모라도 좀 남기라는 거야!" 그가 쉭쉭거리며 말했다. "우리 여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여기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른다고."
"나도 나 하나 쯤은 지킬 수 있어," 샌슨이 팔짱을 끼며 답했다. 샌슨은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델로로부터 등졌다. "날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 없어."
"근데 걱정된다고!" 기델로가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고, 샌슨은 패닉한 목소리에 상대를 돌아봤다. "너 하나 쯤 지킬 수 있는거 나도 당연히 알지. 아니, 난 네 창 솜씨도 알고 그래서 창 끝에 겨눠지는건 상상도 하기 싫거든. 나도 내가 널 왜 이렇게까지 걱정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고, 나도 너 만큼 이 사실이 진짜 열받지만 그래도 걱정스럽다고. 일어났더니 네가 안 보이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네가 저 오두막에서 죽어있는 남자처럼 잠들어 있는걸 이 숲 어딘가에서 발견하는거였어. 그리고 그건, 젠장 샌슨, 진짜 끔찍하단 말이야."
"미안." 샌슨이 한 발 물러나며 사과했다. 어떻게 한번도 생각을 못했지? 만약 그가 눈을 떴는데 기델로는 사라지고 혼자 이곳에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기델로의 지금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샌슨은 그 부분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사과할 건 아니고." 기델로가 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내가 요란하게 굴긴 했지. 분명 이곳이 나한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마음에 안 들어. 어째 여기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기분이 점점 더 나빠져."
"나도 마찬가지야," 샌슨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깰 수 있음에 안도하며 덧붙였다. "소리쳐서 미안해. 네가 날 얼마나 애로 보건 솔직히 걱정 안 하고 대부분은 널 숨막힌다 생각한 적도 없어. 그냥 막막해서 그랬어. 그냥... 여기 왔던 것만 찾아서 얼른 나가자."
둘은 나무숲이 사라지고 고상한 초원이 드러날 때 까지 말없이 걸었다. 두 개의 무덤이 반대편 나무 줄기 근처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클라라의 무덤은 단촐했다. 묘비는 작고 잘 깎인 돌이었다. 비석에는 이름과 생몰년만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천여년 전에 죽은 게 분명했다. 길을 걸어 오는 길에 보았던 흰 장미 한 송이가 비석 위에, 악보는 그 아래에 놓여 있었다. 클라라의 무덤 옆에는 두번째 비석이 있었고, 비석의 이름으로 보아 무덤 주인의 이름이 로버트이며 클라라의 남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클라라보다 몇 년 전에 사망했으며, 그걸 본 샌슨은 비어있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채울 수 있었다. 흰 장미 아래에는 또 다른 악보가 놓여 있었다. 샌슨이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슬쩍 본 바로는 네 개의 엄숙한 노래의 일부분은 아니었지만, 다른 노래가 클라라에게 바쳐졌듯 브라기가 그에게 바친 곳이었다. 언뜻 읽기에도 그 음율은 정말 아름다웠다. 가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고, 상실과 비탄,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샌슨은 굳이 종이를 집어들어 뒷부분을 읽지는 않았다.
기델로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클라라의 무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거 마지막 장이야," 그가 이상하게 목이 막힌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나가야 해. 이렇게 이 사람들의 집을 돌아보고, 물건들을 만지고, 이거 너무 잘못 됐어."
"잘못되긴 했지만 몰랐잖아," 샌슨이 자신의 말이 기델로에게 한줄기 위로가 되길 바라며 기델로의 팔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다른 남자는 고민하는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알아. 근데...우리 뭔가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 같아. 그 남자를 찾았을 때 처럼 그대로 두고 가야 할 것 같아."
"맞아, 가자," 샌슨이 주억거렸다. 그는 기델로와 진심으로 같은 생각이었다. 마치 신뢰를 배반한 기분이었다. 샌슨은 그 찝찝한 기분이 누구를 향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에 살았던 옛 음유시인일 수도 있고, 이곳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친 용일 수도 있다. 비도프니르일 수도 있고, 그 자신일 수도 있고, 기델로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 노래가 누군가를 불멸로 만들어주진 않을거야.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그 이야기가 분명 어디서 왜곡됐을거야. 누군가 이 장소를 멍청하게 노래라고 잘못 말했을 거고 난 - 난 이 노래를 알아서 나가고 싶지 않아." 기델로가 딱딱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발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 오두막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샌슨은 그를 따라갔다.
"나도 마찬가지야," 샌슨이 동의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장소에 관해서 머릿속을 다 지워버리고 싶어.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아 버린 기분이야." 실제로 사적인 곳이 맞았다. 너무나 소중하게 숨겨진 비밀이었고, 샌슨과 기델로는 이곳을 마치 흔해빠진 도둑이나 산적처럼 이곳을 짓밟았다. 그는 비도프니르의 경고를 기억했고 용 앞에 다시 섰을 때 고개를 들 자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막다른 길이었다고 말하고, 모험가에게도 비도프니르의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하자," 기델로가 동요하는지 머리를 쓸어넘기며 앞에서 말했다. "나 때문에 다른 누군가 여기 들어오면 스스로를 용서 못 할거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봐.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겠지. 뭘 위해서? 누군가가 써 놓은 노래 하나 때문에 - "
"기델로," 샌슨이 단호하게 말했고, 기델로는 고뇌에 잠긴 얼굴로 샌슨을 돌아보았다. 제 친구의 고통스런 표정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샌슨은, 기델로에게 다가가 막 눈물을 터뜨리는 음유시인을 꽉 껴안았다.
"내가 키가 좀 작은 건 아는데, 그래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 샌슨이 기델로의 손가락이 제 재킷을 세게 잡아당기는걸 느끼자 말했다.
기델로가 샌슨의 머리칼에 고개를 파묻은 채 말했다.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너 진짜 위로 못한다. 알지?"
샌슨이 그 말에 내심 상처받아 기델로를 밀어냈지만, 기델로의 눈물젖은 얼굴과 떨리는 입술에 담긴 표정에 그저 농담임을 알아차렸다.
"고마워," 기델로가 뒤로 물러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좀 진정된 것 같아. 여기서 나가자."
둘은 왔던 길을 돌아 숲을 지나, 오두막의 모습을 가이드 삼아 출구를 의미하는 얕은 나무숲을 향해 길을 잃어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길을 걸어갔다. 나무들은 마침내 사라져 절벽이 늘어선 길이 나타났고, 샌슨은 자신들이 이 기묘한 영역의 거의 끝에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샌슨은 여전히 알렉산더가 어디쯤 서 있어야 하는지 알았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속도를 늦추고 익숙한 에테르 흐름을 찾기 위해 손을 뻗은 채 나아갔다.
그 다음으로 그가 아는 것은, 그가 광활한 무의 대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동시에 눈이 멀기라도 할 듯 밝고, 고요했지만 숨막힐 듯한 긴장이 귓가에서 터져나갔다.
샌슨은 그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새 이승의 경계를 넘은 것은 아닐까 패닉도 해 보고, 동시에 그랬다면 그가 이렇게 의식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떠올렸다. 의문 하나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더 많은 의문들이 떠올랐다.
버러지 같으니.
깊고, 힘있고, 풍채 있는 목소리가 샌슨이 그 정체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익숙한 방식으로 공명했다. 샌슨은 혹여 브라기의 분노가 제게 내리꽂힐까 감히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공허한 공간은 짙고, 희고 은은한 안개로 바뀌었고, 샌슨은 숨을 쉬기 위해 버둥거렸다.
인간들은 이 별의 탄생 이후로 늘 별을 좀먹는 전염병 같았지.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들고 떠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린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어요," 샌슨이 이성의 외침을 무시하고 소리쳤다. 혹여 안개 속에 숨겨진 것이 있을까 손을 뻗었지만, 손가락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 무언가를 찾으러 들어오지 않았었나? 목소리가 물었다. 네 것이 아닌 것을 가져가겠다는 의도 자체만으로도 인간들은 실패했다. 내 친구들의 삶이 방해받는 것을 두고 보진 않을 거다.
샌슨이 좌절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래를 찾으러 왔어요. 영원의 장송가. 하지만 그게 듣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어떤 장대한 음악이 아닌걸 알아요. 그건 한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위해 쓴 곡이었고, 가져갈 생각 없어요. 그저 집에 가고 싶어요. 제발, 우릴 보내 줘요."
그래서 네가 네 족속들과 돌아와 우리 집을 더럽힐 수 있게 말이냐? 그럴 수는 없지. 인간들은 절대 진실에 귀 귀울이지 않아; 네 미약한 말 몇마디가 네 인간들이 불멸의 삶을 추구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여길 - 돌아오지도 않을거고,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않을 거에요," 샌슨이 분개하며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뇨," 샌슨이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 "
그렇다면 내가 널 보내줄 수 없다는 것도 알겠구나. 우리 집은 영원히 비밀로 남아야 한다.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요. 내 친구와 나는 음유시인이에요. 음악이 어떻게 힘을 갖는지, 그게 적들을 어떻게 눈물짓게 하는지, 얼마나 아름답고 위험할 수 있는지 알아요. 우린 장송가를 찾으러 왔지만, 만약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파괴할 각오를 하고 왔어요."
네가 음유시인이라고? 코웃음도 안 나는군. 음악의 재능은 너에게서 흐르지 않는다.
그 말은 뺨이라도 때리듯 아프게 찔러왔다.
"아닐지도 모르죠, 내가 리라를 연주할 줄 모른다고 해서 내가 당신 친구들 만큼 - "
그를 감싼 공기가 쓰라리게 변했다; 안개는 숨막힐 듯한 연기로 바뀌었고 샌슨은 숨을 쉬기 위해 헐떡였다. 공기는 그에게 달라붙어 무겁게 짓눌렀고, 그 무게에 서 있는 것 조차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을 감히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은 네가 갈망하는 그 무엇보다도 나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홀로 있고 싶어했던거 알아요," 샌슨이 간신히 내뱉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죽자 상심했던 것도 알고, 당신이 아파했던 것도 알아요. 그래서 당신이 - "
닥쳐라.
브라기의 으르렁거리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샌슨은 계속 말했다. "친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어서, 친구의 영혼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서 그를 먹었어요," 샌슨이 중압감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당신을 오해했고, 그래서 친구들은 당신을 이곳에서 쫓아냈어요. 당신이 돌아왔을 때, 둘은 죽어 있었구요. 당신은 혼자였어요. 그래서 목숨을 걸고 이 집을 지키려는 거잖아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은데, 머릿속에 아는 방식은 이것 뿐이었을테니까요."
그만. 그래서 내 가장 어두운 기억을 헤집어서 뭘 알아냈지?
공기는 유황내가 나고 뜨거웠으며, 신 숨을 내쉴 때마다 목이 타는 것 같았다.
"그들을 사랑했어요," 샌슨이 열과 연기, 헤아릴 수도 견딜 수도 없는 슬픔을 뚫고 내뱉었다. "당신이 저지른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에게 바쳐진 노래를 찾았-"
그 노래는 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당신이 돌아오길 바랬다구요," 샌슨은 절망적으로 목에서 찢어지는 말을 뱉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앞이 까만 점들로 얼룩지며 흐려지기 시작했다. 기침하고 막히는 숨을 느끼며, 자신이 죽어가는 지금 기델로는 이곳을 나갈 길을 찾았을지 문득 궁금해 했다.
어딘가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노래는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샌슨은 순간 이런 노래를 들으며 죽는다면 그다지 나쁜 삶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잠시 생각했다.
숨통이 트였다. 공기 속 유황열은 서서히 사라져갔고, 남은 것은 희고 소용돌이 치는 안개 뿐인 곳에서, 샌슨은 숨이 막혀 죽어가며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직접 들은 적은 없는데, 브라기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고, 샌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름다운 곡이죠," 샌슨이 속삭였다. "제가 더 잘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미 제대로해냈지 않느냐.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다.
네 재능은 다른 방식으로 피어나는구나. 이제는 볼 수 있어.
"어... 감사해요." 샌슨이 브라기가 순순이 인정하자 놀라며 말했다.
인간을 신뢰한지 너무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군. 이 믿음을 배반하지 마라. 네 친구와 함께 떠나도 좋다. 만약 이곳에 돌아온다면, 네가 그 대가에 대해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겠다.
"알겠습니다," 안도감에 차오르며 말했다. 샌슨은 약간 히스테리컬하게 웃기도 했다. "여기 다시 돌아올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샌슨은 브라기가 피식 웃는 것을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의식이 흐려짐을 느꼈지만, 신기하게도 그게 두렵지는 않았다.
서서히 의식이 돌아왔을때,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그가 왜 누워 있냐는 거였다. 그가 사실 누워 있는게 아니라 기델로에게 안겨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즈음에는, 왜 기델로가 제 손을 이렇게 아플 정도로 세게 꽉 잡고 있는지가 가장 혼란스러웠다.
"샌슨! 샌슨! 젠장, 제발, 제발 일어나..."
"나 정신 차렸어," 샌슨이 중얼거렸지만 단어는 말을 듣지 않는 입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나갔다. "무슨 일이야?"
손을 아프게 쥐고 있던 힘이 사라졌다. 기델로는 샌슨의 얼굴을 붙잡고는 간절하고, 진득하고, 아프고 엉망진창이지만 끝내주는 키스를 그의 입에 퍼부었다. 샌슨이 키스를 받아주거나 반응할 새도 없이, 그는 몸을 물리더니 샌슨을 세게 포옹했다.
"달의 불타는 바지춤이여," 기델로가 샌슨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널 잃는 줄 알았단 말이야."
샌슨에게 매달린 기델로의 손은 따스했다.
"이게 뭐야?" 샌슨이 조용히 물었다. 기델로의 머리카락에 입이 묻힌 채 말을 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었어?"
"네가 장막을 건드리더니 그대로 쓰러졌어," 기델로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거의 누르지 못한 채 말했다. "그러더니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어. 맥박도, 호흡도, 정말 전부 다 확인 해 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네가 죽은걸까봐 무서웠어."
"그건 아냐," 샌슨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말했다. "나 여깄잖아." 어느 순간부터 그는 제 팔을 기델로에게 감고 있었고, 한참 후에야 기델로는 그의 손길 아래 진정하기 시작했다.
"알아. 그냥 - 나 이번 한번만 이러고 있게 해주라," 기델로가 한숨을 쉬었다. "제발. 이번 한번만."
"이번 한번만일 필요는 없는데," 샌슨이 말했고, 그 말이 둘 사이 공기에 흐르도록 잠시 내버려 두었다. 기델로의 머리카락은 모그모그 고향에서 그랬던 것 만큼 부드러웠다. 샌슨은 기회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손가락으로 쓸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린 파트너잖아."
기델로는 몸을 일으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샌슨을 바라보았다. 느리지만 아주 신중하게, 그는 샌슨의 시야가 흐려지고 기델로의 내쉬는 숨이 볼에 느껴질 때까지 몸을 숙였다. "샌슨 스미스, 너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아," 음유시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키스했다.
기델로의 입술은 며칠 날밤을 찬 공기에 노출된 턱에 꽤나 거칠었다. 샌슨은 그게 그다지 상관없다는 걸 깨닫고, 기델로를 콧날이 부딪힐 때까지 잡아당겼고 입술을 통해 기델로의 가슴 속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시작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살짝 후회감이 밀려들자, 샌슨은 기델로를 살짝 밀어냈다. "나도 정말, 어, 이걸 계속 하고는 싶은데, 브라기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여기서 나가는게 좋을 것 같아."
기델로가 고개를 기울이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브라기? 여길 수호한다는 용? 걔하고 얘기했어?"
"어... 아마 그랬던 것 같아," 샌슨은 그제야 방금 일어난 사건들의 무게가 어깨에 얹혀지는 기분을 느꼈다. "여기서 벗어나면 설명 해 줄게. 아마 몇 잔 하고 나면 할 수 있을 거야."
기델로는 샌슨이 몸을 일으키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두번째로 투명한 장벽을 건드렸을 때, 기델로는 헉 하는 날카로운 숨을 들이켰다. 샌슨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손을 뻗으며 이상한 힘에 의해 고통스러운 충격이나 비슷한 저항이 나타날까 마음의 준비를 했다. 대신, 장벽은 그들이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묘한 방식으로 늘어났다. 샌슨은 벽을 손가락을 밀어낼 수 있었고, 이어서 팔과 나머지 몸을 빼내었다. 기델로도 손을 꽉 잡은 채 그를 따라왔고, 두 사람이 모두 빠져나오자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샌슨이 제때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이 빠져 나온 곳의 공기가 희미하게 반짝이다 멈춰서는걸 볼 수 있었다. 샌슨은 거품 안에서 보았어야 하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없었다. 산의 경사면은 다시 뚫을 수 없을 것 처럼 단단해 보였다.
"해 지기 전에 이딜샤이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샌슨이 물었다. 샌슨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다행히 둘 다 언제든 그리다니아로 공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제 몸이 당장 에테라이트 순간이동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한밤의 이슬을 만나 두 사람이 빌렸던 초코보를 잃어버렸다고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 초코보는 보이지 않았고 호루라기의 소리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샌슨은 순간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그에게 초코보를 절벽에서 끌어올릴 선견지명이 있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당장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기델로가 탄식했다. "지금이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늘 상태를 보아하니 밤까지 몇 시간 안 남은 것 같거든. 아마 안될거야, 우리가 산 중턱에 서 있고 초코보도 없는걸 생각하면."
두 사람은 천천히 해가 산등성이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만 하산했고, 어느 순간 샌슨은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의미가 없을 거라고 선언해야 했다.
"여기서 내려가다 굴러서 다리가 부러지고 싶은건 아니지?" 기델로가 가방에서 착실하게 캔버스 텐트를 꺼내면서도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늘 있을 수 있는 사건 중에 최악이지," 샌슨이 투덜댔지만, 기델로의 애정어린 눈빛을 맞으면서도 계속 침울해 있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야?"
"뭘?" 기델로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빤히 쳐다보는거. 지금처럼."
"난 항상 이렇게 보고 있었는데. 네가 그냥 몰랐을 뿐이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뒤로 돌아서며, 말없이 텐트 치는 것을 도왔다. 샌슨은 브라기의 영역에 머물며 얼마나 주변 소리를 그리워 했는지 깨닫지 못했었다. 영역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정적이고, 지독하게 생기가 없었다. 샌슨은 지금이 훨씬 좋았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장비를 풀어놓고 침낭 안에 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샌슨은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고, 운 좋게도 꿈 하나 꾸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샌슨과 기델로는 다음 날 낮에 이딜샤이어에 도착했고 샌슨이 원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대대적인 축하와 마주해야 했다. 한 무리의 고블린들이 통로로 우루루 몰려와 요란하게 삐걱이고 꽥꽥거리고 긴 슈우우우우우우욱 소리를 낸 다음 꼬리를 돌려 도망갔다. 샌슨이 이들의 행동에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팔을 허리에 올린 한밤의 이슬을 마주해야 했다.
"막 수색대를 꾸리던 참이었어," 한밤의 이슬이 말했다. "저 고블린들이 선봉에 설 예정이었지. 우리 카르멘이 너희들 없이 사흘 전에 혼자 뛰어 왔어. 너네가 살리아크 산 어딘가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한게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하더라."
"사흘이요?!" 샌슨이 헉 소리를 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가 있었지?"
기델로가 "용이잖아" 하며 중얼거리더니, 너무나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해서 혹여 한밤의 이슬이 전말에 대해 알아차릴까봐 샌슨은 내심 이를 악물고 불안해했다.
다행히 기델로는 꽤나 능숙하게 거짓말을 풀어냈고, 샌슨이 혹여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 이제 그는 푸른손 고블린들의 강력한 특제 기절탄에 맞아서 사흘 내리 기절해 있었던 사람이었다 - 한밤의 이슬은 정황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샌슨은 대장이 두 사람을 위해 해준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늘어놓는게 비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샌슨은 브라기와 약속을 했고 그걸 지킬 작정이었다. 샌슨은 이딜샤이어로 돌아오며 몇가지 세부 사항을 기델로와 아침 일찍 공유하긴 했지만 스스로도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했다. 기델로가 브라기와 대화 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하는지 눈치챘지만, 샌슨 스스로도 크게 확신하지 못했다.
"늘 여행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지," 한밤의 이슬은 기델로가 자책하며 크게 한숨을 내쉬자 답했다.
세 사람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샌슨은 그가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확신했고, 그래서 한밤의 이슬과 악수하며 그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러고 둘은 그리다니아의 에테라이트 한 지점을 떠올리기 시작했고, 열을 세기도 전에 그의 익숙한 집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늘 현장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돌아온 것에 안심했다. 물론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 친숙한 풍경이 가져다 주는 편안함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샌슨에게는 해야 할 서류처리와,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할 내용들이 쌓여 있었지만, 일단 제대로 된 침대에서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기 전까지는 미룰 수 있을 거라고 이딜샤이어에서 이미 다짐한 상태였다.
기델로가 옆 사람의 팔을 슬쩍 건드렸다. "내일은 꼭 얘기해주는거다." 그 또한 오늘은 쌍사당에 가지 않을 작정인 모양이다.
둘은 샌슨의 아파트로 돌아갔다. 사실 샌슨은 기델로가 정확히 어디 사는지 알지 못했고 이 도시 안에서 사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샌슨은 먼저 샤워하러 들어가며, 기델로에게 같이 가자고 물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 보았지만 둘 사이의 새 잠정적 관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 감히 물어보진 않았다.
기델로는 전에도 이 집에서 머무른 적이 있었다. 샌슨이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기델로는 김이 나는 따뜻한 머그잔을 끌어안고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만." 샌슨은 단지 그 장면에 너무 주의가 흐트러진다 생각하며 말했다.
"뭘 그만해?" 기델로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그거. 지금 하고 있는거. 차 손에 쥐고 내 부엌에서 샐샐 웃고 있는거."
기델로가 키득거렸다. "왜, 네 얼굴 앞에서 웃고 있는게 더 좋아?" 기델로가 말했고, 그의 파란 눈이 샌슨을 꼼짝 못하게 하고 그 장면을 세상 사람들이 언제든 다 볼 수 있게 누르는 건 정말이지 불공평했다. 마치 샌슨이 겁먹기라도 할 것 마냥, 기델로는 조심스레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샌슨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부엌을 가로질러 와 손을 마주 잡았다.
샌슨은 뭘 해야 할지, 기델로가 뭘 원하거나 기대하는지 확신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기델로는 샌슨 스스로가 원하는 뭐든 하길 바랄 지도 모르고 -
그래서 샌슨은 생각을 멈추고 기델로를 끌어당겨 타는 듯한 열기와 부드러움을 가득 담아 키스했고, 그제서야 딱 한가지 문제만 빼면, 둘은 무언가 다른 방향으로 관계가 이어질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 미안한데, 너 지금 좀 냄새나. 빨리 가서 씻고 와."
기델로는 샌슨이 입을 삐죽 내미는걸 볼 수 있을 만큼만 살짝 멀어졌다. "같이 씻자고 할 수도 있었잖아. 절대 싫다고 안 했을텐데." 그가 불평했고, 샌슨은 그 말에 동하기 전에 기델로를 욕실로 밀어넣었다.
샌슨은 상대방이 없는 틈을 타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둘의 이야기가 적어도 비도프니르를 만나기 전까지는 꽤 일관성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샌슨은 그 시점까지는 둘의 여행에 대해 거리낌없이 써내려갔다. 기델로가 샤워를 마칠 무렵 샌슨의 차는 찌꺼기만 남은 상태였고 걸어서 여행하는 것 보다 에테라이트 텔레포트를 사용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왔기에 원칙대로라면 쌍사당은 절대 비용을 대 주지 않겠지만, 업무는 기본적으로 성실함의 문제였고 샌슨은 매우 성실하다고 평판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기델로는 샌슨이 이런 상황을 위해 남겨뒀던 편안한 옷을 입고 문가에 나타났다.
"나 강등 신청이라도 할까봐," 샌슨이 최대한 가볍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기델로의 눈썹이 앞머리까지 휙 올라가는걸 놓치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그가 옆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며 답했다.
샌슨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왜? 왜겠어? 네가 나타나서 날 그 사무실에서 빼내기 전까지 완전 비참한 상태였는데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어. 진급하면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여태 해온건 산더미같은 서류를 처리하고 창 밖을 쳐다만 보는거였잖아. 더는 못 하겠어. 안 해. 내가 왜 진짜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데 책상에 앉아서 한 달 뒤에는 그만 둘 사람들을 위한 훈련 계획 같은걸 짜고 있어야 해?"
기델로는 꽤나 호의적이었다. "쉽게 허락 안 해줄 것 같긴 하지만," 음유시인이 말했다. '그 멋대가리 없는 놈들'은 샌슨을 처음에는 죽게 내버려 두더니 이후에는 감시하려고 그를 승진시킨 놈들이었다.
"알아. 근데 내 요청 안 받아주면, 뭐 - 때려치지 뭐," 그가 필요 이상으로 세게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궁술사 길드라면 날 받아줄걸."
기델로는 그의 미지근해진 차를 길게 들이키다 말고 컥 하고 목에 걸린 소리를 냈다.
"만약 쌍사당이 그정도로 생각이 없을 때 얘기지만," 샌슨이 재빨리 정정했다. 창술사는 왠지 활을 잘 다루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둘은 그들이 쓴 내용이 진실이라고 위아래로 적당히 맹세할 수 있을 때 까지 보고서를 함께 썼다. 서류를 끝낼 때 즈음 램프 기름은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젠 나한테 얘기 해 줄 거야?" 기델로가 물었다. "네가 처음으로 벽을 건드렸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샌슨은 얘기했다. 기델로는 끝내주는 청중이었다. 완벽한 타이밍에 숨을 들이키고 으르렁거렸으며, 샌슨이 브라기가 그를 풀어주도록 하려 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하자, 기델로는 애정을 담뿍 담아 달콤하고 부드럽게 키스했고 샌슨은 그 키스가 끝나지 않길 바랬다.
"거봐, 내가 말했지," 기델로가 환희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너도 음유시인이야. 너 고대 용한테 인정 받은거라고. 이제 아무도 너한테 뭐라 못할걸."
"처음에는 노래하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샌슨이 반박했다. "그리고 아무도 내가 일천살 넘게 먹은 용한테 인정받았단거 영원히 모를걸."
기델로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 그러게. 허. 근데 진실은, 네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노래를 했고,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그 노래가 용의 마음을 움직여서 걔가 널 죽이지 않게 했다는 거야. 혹시 나도 살려낸걸지도 모르지."
"내가 한 거라곤 용을 슬프게 한 것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샌슨이 애매하게 인정하며 말했다. "그에게 끔찍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거든."
"과소평가 금지." 기델로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꾸짖었다.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네가 더 나은 음유시인이라고 몇 년을 얘기해 왔는데, 아 물론 지금 부대만 빼고, 어쨌든!" 기델로는 샌슨이 눈을 굴리자 그저 웃었다. "언제쯤 네가 멋지다는걸 믿어줄 건데?"
"아마... 내가 무언가 진짜 멋진걸 해내고 나면?" 샌슨이 말했다.
"흠. 그럼, 내 생각에 오늘의 너는 충분히 멋있다고 할 만했거든. 이것도 그렇다고 치자."
"그렇네. 고마워," 샌슨이 제 눈시울이 붉어지는걸 느끼자 놀라며 말했다. "나 이제 울어도 돼?"
"내가 울어도 될 때만 나도 허락할거야."
그러자 샌슨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 그는 제 주머니를 두드려 보고는, 옷이 달라진걸 깨닫자 벌떡 일어났다. 기델로는 호기심에 입을 벌리며 그를 침실까지 따라왔다.
"이거 이제 돌려줘도 돼?" 샌슨이 기델로의 일기장을 널부러져있던 코트에서 꺼내 내밀며 물었다. "난 네가 나한테 뭘 말하고 싶어했는지 이제 궁금한데."
기델로는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표정으로 일기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뭐, 갖고 싶으면 네가 가져." 그가 말했다. "항상 하나 더 가지고 다니거든. 그리고 비밀이라면... 음, 이제 더 이상 큰 비밀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말해주길 좋겠어? 내가 널 좋아한다, 아니면 네가 지독하게 귀엽다? 널 위해 노래를 쓰는게 나을까? 아니면 요점을 한방에 이해할 수 있게 키스하는게 더 좋아?"
"아 그만," 샌슨은 기델로가 방금 한 말을 그대로 실행했을 때 웃고 있었다. 둘은 침대 매트리스 위로 굴러가, 기델로가 샌슨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손가락이 얼굴을 감쌀 수 있도록 살짝 멀어질 때 까지 서로의 온기와 무게감을 즐겼다.
"아니면 내가 정말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널 절박하고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 기델로가 샌슨이 눈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만 멀어지며 중얼거렸다. "매일 네 생각을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널 만질 수 없다는 사실에 미쳐버릴 것 같았어.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백 개의 노래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네가 한번 웃는 걸 보는 것만은 못하더라고." 그가 요란하게 한숨을 쉬었다. "샌슨,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원하면 나 만져도 되는데," 샌슨이 용기를 내 말했고, 기델로는 눈을 굴렸다.
"지금이야 그럴 수 있지, 그리고 그게 사랑노래에서 좋은 서사가 되어주진 않잖아. 음 - 내가 쓰고 싶은 종류의 노래가 아니긴 해."
"그럼 어떤 걸 쓰고 싶은데?" 샌슨이 물었고, 잠시 뒤 기델로는 조용한 음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벌써 하나 썼어?" 샌슨이 놀라며 물었다. "마음에 든다."
"아직 작업중이야," 기델로가 멋쩍어 하며 인정했다. "근데 명심해. 이거 완성하면 도시국가들을 다 지배할 수 있을걸."
샌슨의 얼굴이 붉어졌고, 기델로는 그 장면에 눈썹을 휙 올렸다.
"내가 너한테 해준 그 많은 말들을 다 제쳐두고, 지금 이거에 얼굴 붉히는 거야?" 기델로가 놀랍다는 듯 물었다. "내가 널 그동안 잘못 봤네."
"그냥... 정말 고마워," 샌슨이 말했다. "근데 제발 네 노래로 도시는 파괴하지 말아주라. 특히 나에 관한걸로는 더더욱."
기델로는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 뭘 한거야?"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샌슨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샌슨 스미스, 방금 나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거야?"
"그거 내가 물어볼 말인 것 같은데," 샌슨이 기델로가 물러나 쏘아대는 눈빛에 새삼 뺨의 열기가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 이해시켜 줘," 기델로가 거의 가르랑거리며 말했고, 샌슨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눈치챘다.
"몇 년을... 진짜 몇 년을... 너만 바라보고 있었어." 샌슨이 인정했고, 한번 말문이 트이자 뒤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첫 임무를 함께 한 후부터 내 머릿속에서 널 지울 수가 없었어. 정말 미칠 것 같고, 열받고,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 키 큰 엘레젠 얼간이를 보면서 내가 쟤한테 사랑에 빠졌다는걸 깨닫는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기델로는 웃음과 헉 소리의 중간 정도의 숨막힌다는 소리를 냈고 샌슨은 머리 끝까지 당황해서 당장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을 했다. 그는 기델로의 가슴께에 얼굴을 파묻었다. 애초에 이렇게 괴로워하는 이유가 기델로 아래에 누워있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최선의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기델로는 그저 샌슨의 느슨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훑어보곤 그를 귀끝까지 타오르게 할 대답을 중얼거렸다.
End Notes
저는 크리스타리움 NPC 이름이 브라기인 것도 알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요. 두 사람 이름이 같을 수도 있죠. 브라기 브라기 브라기.
Four Serious Songs(네 개의 엄숙한 노래)는 요하네스 브람스가 작곡한 4곡으로 구성된 악곡입니다. 그는 클라라 슈만이 그 해 초에 뇌졸중을 앓자 그의 죽음을 예상하고 쓴 곡입니다. 클라라는 그의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그의 남편, 로버트 슈만 또한 브람스의 소중한 친구였고, 클라라의 사망보다 훨씬 이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람스는 로버트를 존중하는 의미로 그의 연심을 내보인 적은 없지만, 현대에는 그가 클라라를 사랑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Immer leiser wird mein Schlummer(내 잠은 점점 깊어져만 가고)는 제가 샌슨이 브라기에게 불러주었을 거라 생각했던 곡입니다.
연속성이나 문법에서 무언가 망친 곳이 있다면(ㅋㅋ 이 많은 드라바니아인/용이라는 표현을 보세요) 미안합니다, 지난 주 내내 논스탑으로 이 글만 쳐다보고 있었고 제 뇌는 이미 튀겨진 상태에요.
이런 종류의 글을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건설적인 비판은 늘 환영하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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