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원문(https://archiveofourown.org/works/17150132)을 읽는데 도움을 드리거나, 번역하는 과정(https://archive6558.tistory.com/5)에서 약화된 부분에 대한 코멘터리입니다. (이 뉘앙스를 다 묻어버리자니 서글퍼 지는 사람의 눈물의 글/정말 좋은 번역가는 이런 주석 따위 필요가 없습니다)

* 번역본을 읽고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원문을 무리없이 읽으실 수 있는 분이라면 원문만 보셔도 충분합니다.

 

 

1. The Stiff

 

 원문 영픽에서, 샌슨을 'The Stiff'라고 칭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나옵니다. 어원에 따라 '돌머리'로 번역되었습니다. 원어로는 모두 같은 표현이며, 어원은 북미판 음유시인 52레벨 잡 퀘스트인 'The Stiff and The Spent'입니다. 한국어로 '방탕과 돌머리'죠. 한국어 잡 퀘스트가 일본어를 기준으로 하며, 일본어에서 '답답하고 벽창호 같은 사람'을 '돌머리'라는 표현으로 자주 칭하므로 한국어에서도 이렇게 번역된 것으로 보입니다. 언뜻 보면 북미에서도 '뻣뻣한 놈과 (능력 등을)낭비하는 놈' 정도니, 한국어 그대로 차용하는 것 또한 괜찮아 보입니다.

 문제는, 번역된 글을 읽으시며 위화감을 느끼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에서 나온 'The Stiff'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I thought you were supposed to be ‘the Stiff’, not ‘the Shrill’!”

> "나는 네가 그 '돌머리'지, '까칠이'는 아닌 걸로 알았는데!"

>> The Shrill과 라임을 이루며, 주변에 관심이 없고 눈치 없는 사람을 의미

 

2. Sanson the Stiff was very good at following instructions

> 돌머리 샌슨은 타인의 지시를 따르는데 굉장히 익숙했다

>> 상황대처에 유연하지 못하고 뻣뻣하며, 타인의 지시를 잘 따르는 군인같은 사람

 

3. "How would you seduce Sanson the Stiff?" / "How am I supposed to keep calling you “Sanson the Stiff” after that?"

> "어떻게 네가 돌머리 샌슨을 유혹할건데?" / "내가 이제 어떻게 너를 계속 '돌머리 샌슨'이라고 부르지?"

>> 성적인 플러팅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무지한 사람 

 

  3번이, 그것도 두번째 대사가 꽤 큰 문제가 됩니다. 물론 '네가 나한테 유혹당했으니 돌머리라고 어떻게 부르지?'라는 뜻도 있습니다. 

 'The Stiff and The Spent'는 직역상으로는 한국어/일본어와 비슷하지만, 영어의 뉘앙스를 적용해 보면 s라임과 함께 '(조쉬가)딱딱한 놈과 (사정하고 난 후에 식어버린 거시기를 표현하는 말...꼬무룩??)한 놈'이라는 엄청난 표현이 숨어있습니다.  둘이 열심히 싸우는 퀘스트에 둘 별명으로 이런 섹드립을 넣어 놓다니요... 북미판 원문이 굉장한 떡밥을 뿌려서, 작가님도 굉장한 농담을 하신 거에요. 둘은 아주 만족스런 섹스를 한 직후이니 거기가 서 있을리는 당연히 없고, 그러니 "내가 너를 '거기가 서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 이제 어떡하지?(내가 가라앉혀버렸잖아)"라는... 뉘앙스가 포함된... The Spent 기델로 다운 섹드립이 포함되어 있는 대사입니다.

 

 문제는 몇날 며칠을 고민해도 이걸 살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한국어에는 이런 표현이 없거든요. 적어도 3번의 표현을 통일하므로서 첫번째 뉘앙스는 나타내는게 가능했으나, 아직도 완벽하게 의미를 살릴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한계를 체감해서 구구절절 코멘트로 달아놨습니다. 기델로의 음유시인식 섹드립이 곳곳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단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2.  a few fulms away

 

'fulm(풀름)'은 거리를 재는 단위 피트(feet)의 에오르제아식 표현입니다. 이 점을 알려주신 지인분께 이 글을 쓰면서 깨알같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영어라고 치사하게도 야드파운드법을 씁니다. 샌슨이 저도 모르게 '뭐??'하고 소리친게 몇 풀름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는 이야기죠. 한국어의 구수한 속담을 생각해 보자면 '그 소리가 백 리 밖에서도 들릴 것 같았다.'정도가 되겠네요. 

 

 

 

3. Rude

 

 음유조 친구들을 좋아하는 분들은 기델로에게 고정 대사가 있다는 걸 모두 알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바로 '멋대가리'죠. '이 멋대가리 없는 놈', '아주 멋대가리 없는 행동', '너네 정말 멋대가리 없었다', '몇 번을 말하리 멋대가리 없다고...' 예시를 들라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무언가 '자기 마음에 안 들고', '정의롭지 못하'며, '용기 없는 행동'을 기델로는 모조리 퉁쳐서 '멋대가리 없다'고 말합니다. 종언의 노래 따윈 잘 모르겠고 빛의 전사가 좀 멋진 것 같다고 여행을 따라나선 폼생폼사 음유시인인 만큼 꽤나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놓고 빛전은 아웃 오브 안중이고 결국 샌슨과 연애질 한다는 점에서 더 굉장하기도 합니다)

 

 서글픈 점은, 북미판에는 이러한 고정 대사가 없습니다. '멋대가리'라는 표현을 'not cool'로 퉁치기에는 그 찰진 뉘앙스가 안 산다는건 금방 이해하실 겁니다. 그저 말투가 샌슨에 비하면 조금 날카로운 정도가 다죠. 그래서 영픽 내에도 기델로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대사는 없습니다. 딱 한번 유사한 대사가 나오는게 바로 'rude'입니다. 샌슨이 부엌에서 '어어어엌 너 뭐야 왜 여깄어????'할때 대답이죠. 처음에는 저도 '그건 좀 무례한데,'정도로 번역했다가 이왕 번역하는 김에 고정 대사를 넣었습니다. '또 멋대가리 없는데' 입니다. 

 

 

 

4. Hyrstmill

 

 검은장막 숲 북부삼림의 숲언덕 공방입니다. 달리 고민할 것 없이 그냥 '숲언덕 공방'이라 번역했습니다. 북부삼림에서도 북동쪽 구석에 위치해 있으며, 플레이어들은 제타 무기를 만들러 게롤트에게 가거나, 갈론드 장비를 강화하러 강화재를 들고 찾아가거나, 이크살족 퀘스트를 할 때 자주 들르는 곳입니다. 샌슨이 여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여기가 신궁부대 전초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이 또한 알려주신 지인분께 미리 점핑큰절을 보냈음을 알려드립니다.

 

 샌슨이 기델로가 연병장(배넉 연병장/상대적으로 그리다니아에서 가까운 곳)에는 안 가겠다 버티자 나는 취한 너 거기까지 안 데려다 줄거라고 으름장을 놓죠. 그리다니아에서 상당히 먼 곳이고, 샌슨은 쌍사당 장교니 그냥 그리다니아 거주지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거라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입니다. 그렇지만 샌슨은 몰랐겠죠 기델로가 자기 집에 데려가 달라고(대놓고 말해 라면 먹고 가게 해줘/너네 집에서 넷플릭스 볼래) 할 줄은...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어엌 그래 해버린게 이런 결말을 맞을 줄은...

 

 

 

5. Perry

이 친구가 Perry

 

 샌슨이 기델로와 처음으로 키스했을때, 기델로의 입에서는 'Perry(배 즙으로 만든 술)'의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좋게 말하면 과일 냄새 나쁘게 말하면 술냄새 발효된 배(아마 서양배?)로 만든 술이라고 하네요. 무난한게 '과일주'로 번역했습니다. 배술이라고 하면 좀 이상해서... 배경이 중세 시대에 가까운 그리다니아라, 정제된 술(한국으로 치면 소주)보다는 과일주 위주의 술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현대 우리가 마시는 과일주는 도수가 낮지만, 설정상 에오르제아의 과일주는 도수가 꽤 높은 것 같아요. 저희가 동네에서 파는 과일주 세 병 마시고 저렇게 훅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훅 가도록 들이키고 다음날 늘어지게 잔 샌슨보다 멀쩡한 기델로의 해독력에 치얼스...

 

 

 

6. Woke up and my mouth tasted like a voidsent sewer

 

 딱히 고민할 거리 없이 직역한 부분입니다. '눈 떠보니 입에서 보이드의 폐수 맛이 나더라.' 술 퍼마시고 퀵슬립 후 자고 일어나면 당연히 입에서 끔찍한 냄새가 납니다. 픽션 치고는 굉장히 깨는(...)부분이며, 샌슨도 읽는 분들과 함께 이 말에 긴장이 탁 풀려 버립니다. 엘레젠들의 귀(이건 좀 킹키한 부분이지만)와 엘레젠들의 대물에 대한 휴런 남성들의 질투만큼이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가님이 하이퍼리얼리스틱하게 넣어놓은 부분 중 하나입니다. 

 

 태그도 번역해 뒀는데, 특이한게 아마 하나 눈에 띄셨을 겁니다. 'Ye Olde Dental Care(옛날 방식의 치아 관리)' 아니 이게 뭔소리야???싶으셨을 거에요. 아침에 샌슨이 부엌에 갔더니 기델로가 민트 잎을 씹고 있었죠.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양치 대신(칫솔과 치약이 없었으니까) 민트처럼 화한 향이 나는 허브를 씹고 뱉으면서 이를 씻었다고 하네요.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샌슨이 일어나기 전에 호다닥 숙소로 달려가 이파리 챙겨와서 그루밍하고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하는 점이, 그냥 가버릴 수 있었지만 민트 잎 챙겨와서 샌슨이 일어날 때까지 부엌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델로가 좀 귀여운게 포인트입니다.


 

7. 얘네가 시늠을 안 해요

 

한국어/일본어 십구금 컨텐츠에 비해 신음소리에 대한 묘사가 적은게 영픽의 대체적인 특징입니다. 영픽을 처음/적게 접하셨다면 이 부분에서 위화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릅니다. 영픽은 보통 정신없이 이름을 불러대는 경우가 더 많죠. 그리고 샌슨이 본인도 모르게 아무말 대잔치를 한다는(babbling)데 대한 대사가 몇 줄 있는게 다입니다. 맹세컨데, 저는 다 번역했습니다. 제가 창작을 하면 이것보다는 더 많이 쓰겠지만(저는 이런거 좋아해요), 번역물인 만큼 그대로 내버려 뒀습니다.

 

 

 

8. After five moons

 

 달이 다섯번 지고, 금방 이해하셨겠지만 '5일'을 의미합니다. 이걸 쓰다가 기존의 다섯 달이 오역이라는걸 깨닫고(달이 '월(month)'의 의미를 영어에는 가지고 있지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써놓고 스쳐지나가버렸습니다.) 호다닥 수정했습니다. 샌슨이 하루종일 기델로 생각하느라 고민하는 이 날은 음유시인 창천 잡 퀘스트가 끝난지 5일 후입니다. 쌍사당 본부 어딘가에서 머리 부여잡고 자기 감정에 대해 고민했을 샌슨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어쩌면 이 픽은 홍련 잡 퀘스트에서 두 사람이 왜 그렇게 꿀떨어지는지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빛전이 다른 모험을 하는 그 사이에 이렇게 몸도 맞고 마음도 맞았으니 이미 올드 메리지 커플 느낌이 나는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9. Sanson steered them right, while Guydelot lurched leftwards

두 사람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작가님이 정말 섬세하게 글을 쓰신 부분이라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칼라인 카페에서 술에 취해 엉망진창인 샌슨한테 토할 뻔했던 기델로를 부축하고 나온 샌슨은 작은 언덕과 갈림길을 마주합니다.  샌슨은 그 과정에서 기델로를 끌고 오른쪽으로 가려고 했고, 기델로는 반대로 왼쪽으로 가려고 버티죠. 칼라인 카페에서 나가는 방향으로 서 보면 실제 지도와 똑같거든요. 오른쪽은 푸른 오소리 관문으로, 실제로 배넉 연병장이 있는 검은장막 숲 중부삼림으로 이어집니다. 왼쪽은 에테라이트 광장을 포함한 그리다니아로 이어지는 곳으로, 샌슨이 정확히 어디서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집이 그쪽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샌슨은 기델로를 부축한 채로 중부삼림까지 끌고 갈 각오를 다지고 있었을 거고, 기델로는 거기만은 안 가겠다 다짐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면 참 귀여워요. 

 

 

 

 

 

 

 

 

 

원래 영픽의 바다에서 사는 노답맨이지만, 직접 작가님께 허락부터 끝까지 완료한 첫 영픽 번역이었고, 그래서 머리 부여잡고 열심히 번역했습니다. 오역이나 의역에 어색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언제든 지적해 주세요. 분명 번역할때는 이것보다 더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올려놓고 보면 기억이 안 난단 말이죠. 생각나면 더 넣겠지요..

'Bard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스포일러)  (0) 2021.12.24
[번역] To Eternity and Beyond  (0) 2021.06.27
[번역]My heart sings for you  (0) 2019.11.06
음유시인 80 잡 퀘스트 북미판 번역  (0) 2019.08.04
[번역]Concerning you  (0) 2019.07.18

+ Recent posts